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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허균과 알리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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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7 21:19:06 수정 : 2014-10-17 22: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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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 국내진출에 기대반 우려반
어울리되 경계하는 ‘화이부동’ 필요
우선 한시 한 구절. “肝膽每相照(간담매상조), 氷壺映寒月(빙호영한월).” 이 구절은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시 서울대 강연에서 인용한 허균(1569∼1618년)의 시구(詩句)다. 시 주석은 이 구(句)를 인용하면서 ‘티없이 깨끗한 마음으로(氷心玉壺·빙심옥호), 속내를 다 드러내고 사귀는 사이(肝膽每相照)’로 한·중 관계의 친밀성을 강조했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정말 가까운 사이라서 그럴까. 중국의 한국 투자 열풍이 거세다. 그중에서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아예 피아(彼我)의 경계를 허물려는 기세다. 중국 자본이 노리는 대상은 게임업체에서 연예기획사까지 업종 불문, 매물이 나오면 바로 손을 뻗는다.

중국 게임업체 텐센트는 최근 국내 기업 파티게임즈에 200억원을 투자하고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텐센트는 3월에도 넷마블게임즈에 53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중국 인터넷 대기업 알리바바도 5월부터 국내 게임업체 파티게임즈, 네시삼십삼분 등과 게임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다. 중국의 샨다게임즈도 이미 10년 전에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했고 2010년엔 아이덴티티게임즈를 인수한 바 있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 중국 화책미디어그룹이 535억원을 들여 국내 영화사 NEW의 지분을 사들여 2대 주주가 됐다. ‘중국판 유튜브’인 유쿠투더우는 내년부터 부산영화제의 아시아 단편영화부문을 지원하기로 했고, 자금난을 겪던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도 3만달러를 쾌척했다. 아시아필름마켓의 개막식 파티와 폐막식도 중국 기업 유쿠투더우와 아이치이가 전액 후원했다. 중국 자본이 국내 게임·영화계에 눈독을 들이는 건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메꿀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국내진출에 대해 국내 관련업계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중국 시장 진출의 기회를 잡았으니 좋은 일 아니냐고 투자를 반기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예전에 애니메이션 업계와 일본의 관계처럼 게임·영화산업도 결국 중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다시 허균의 시로 돌아가자. 이 시는 허균이 정유재란(1597년) 때 조선에 왔다가 귀국하는 명나라 문인 오명제 에게 전한 ‘송별시’다. 그런데 ‘간담매상조’라는 구절은 사실 허균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당나라 명문장가 한유의 글 중 ‘간담상조’라는 옛 문장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 시는 오명제가 후에 편찬한 해동역사 ‘예문지’에 소개됐다.

그런데 이 시 전체를 다 읽어보면 마냥 우정의 시로만 읽을 수 없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라는 중국과 외방이 다르다지만(國有中外殊), 사람은 오랑캐와 중국인으로 나눌 수 없네(人無夷夏別), 태어난 곳 달라도 모두 형제니(落地皆弟兄), 초나라 월나라 사람으로 나눌 필요가 있으리(何必分楚越), 간담을 매번 서로 비추고(肝膽每相照),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겨울 달이 내려 비추네(氷壺映寒月), 그대는 나의 추함 깨닫게 해주었고(依玉覺我穢), 그대 아름다운 글은 도저히 따를 수 없네(唾珠復君絶).”

첫 구에 나라가 중국과 기타로 구분된다고 인정한 다음, 둘째 구에 ‘사람을 어찌 오랑캐와 중화민족으로 나누겠느냐’고 읊고 있다. 이는 논어 팔일(八佾)편에 나오는 ‘오랑캐의 나라에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있다하더라도 중국에 인물이 없는 것만도 못하다(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즉 내가 중국인은 아니지만 오랑캐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것. 마지막 구의 타주(唾珠)는 “기침과 침조차 모두 구슬이 된다”는 ‘타주성주(咳唾成珠)’에서 나온 말로서 “그대에게서 나오는 말은 기침과 침조차 다 옥구슬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허균이 이 시를 쓴 지 400년이 넘었다. 조선 당대 문장가 허균이 중국의 ‘듣보잡’ 문인에게 보인 과공(過恭)이 슬프다. 지금 우리 문화산업계는 중국 돈이라면 모두 다 옥구슬 같은가. 알리바바가 국내 어느 게임업체를 노린다느니, 중국 기업이 어느 연예기획사를 점찍었다느니 하는 소문 한마디에 울고 웃는 요즘의 우리 오락산업계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어울리되 경계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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