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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칼럼]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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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9 21:38:02 수정 : 2014-10-19 22: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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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과 당근’ 잘 살려야 성과
‘5·24 대북조치’ 대화로 풀어야
2012년 11월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얀마 양곤대학교에서 연설을 했다. 취임사에서 “주먹 쥔 손을 펴면 그 손을 잡겠다”고 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미얀마가 손을 폈으니 그 약속을 지키려 왔다고 했다. 그런 다음 북한에 메시지를 보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평화와 진보의 길을 택한다면 미국이 손을 잡을 것이다.” 이듬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북한이 미얀마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왜 미얀마인가? 세계가 탈냉전과 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있던 1988년, 네윈 정권의 26년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아웅산 수치가 부상한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그 시위는 새로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의해 무참히 진압됐고, 그때부터 미국의 경제제재가 시작됐다. 신군부의 폭정은 지속됐고 그때마다 미국은 제재를 더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미얀마는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다”는 통설을 입증하는 사례가 됐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북한에 대한 5·24조치의 향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지금 따져보자. 과연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는가? 결론적으로 20년 동안 지속된 경제제재가 미얀마의 정책을 바꾸는 데 실패한 이유는 미국이 제재를 취하기만 했지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2009년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관여가 성공한 것은 20년의 제재가 장기적인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경제제재는 상대에게 경제적 고통, 나아가 정치적 부담을 주어 문제의 정책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조치가 그렇듯이 제재는 그것을 협박하는 동안에만 ‘채찍’으로서 협상력을 가진다. 제재로 인한 고통의 가능성 때문에 상대가 정책을 재고하기 때문이다. 일단 제재가 취해지면 그 협상력은 사라진다. 대신 새로운 협상력이 생긴다. 그 제재를 해제할 가능성, 즉 ‘당근’으로서 협상력이다. 그 협상력을 살리려면 대화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은 미얀마가 알아서 굴복하길 바랐을 뿐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재는 20년간 지속됐다.

그 결과 한때 동남아 제일을 자랑했던 미얀마 경제는 최악이 됐다. 2013년 미얀마 무역의 70% 이상이 태국, 중국, 인도 등 인근 국가 사이에 이루어졌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과의 무역은 17%가 못 됐다. 미얀마에는 중국인이 넘쳐나고 중국은 미얀마를 쥐락펴락했다. 18세기 말 네 차례에 걸친 청나라의 침공을 끝내 막아냈던 미얀마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미국이 미얀마를 방치했던 이유는 미얀마가 가진 전략적 가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전의 첨병도 아니었고 경제관계도 깊지 않았다. 그런데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다시 본 미얀마는 그 전략적 가치가 크게 높아졌다. 아시아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이 변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의존 탈피라는 미얀마의 이익과 중국에 대한 포석이라는 미국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면서 미국·미얀마 관계는 정상화됐다.

제재의 가능성이 가진 협상력을 살리지 않은 채 여러 조치를 한꺼번에 던졌던 대북 5·24조치는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우선 해제하고 보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제재 해제의 가능성이 가진 협상력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5·24조치 결과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북한의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정책으로 최대한의 자율성을 추구했던 북한으로선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이 참으로 참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미·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그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5·24조치가 장기적으로 가져 온 협상력이다. 그 협상력을 살려 남북 사이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화를 해야 한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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