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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에게 따뜻함과 힘을 주고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

입력 : 2014-10-20 20:07:58 수정 : 2014-10-20 20: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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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중국 미술계 영파워 진르미술관 가오펑 관장
베이징 진르미술관(今日美術館)은 중국 현대미술의 창구로 통한다. 당대미술의 진원지이자 발신지 역할을 해 오면서 중국의 대표적 미술관으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엔 30대 젊은 관장이 취임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사자인 가오펑(高鵬·32) 관장을 진르미술관 관장실에서 만났다. 미술관 맨 위층에 자리 잡은 관장실은 통유리벽으로 밖에서도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옆에 붙어 있는 학예실과 행정실도 관장실과 같이 투명한 구조다.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진르미술관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미술계 영파워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오펑 관장이 이끌고 있는 진르미술관의 행보는 중국 당대미술의 얼굴이기도 하다.


“호텔 등을 소유하고 있는 진르미술관 창립자는 부동산 사업으로 큰돈을 번 인물이다.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아 영화에도 투자를 했다. 지인들의 전시회를 도와주면서 미술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순수한 예술지원사업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진르미술관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비정부기구(NGO)로 인정받은 비영리단체다. 창립자의 아내도 기업인으로 문화지원사업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운영의 중심엔 이사회가 있다.

“3명의 해외미술관 관장도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내 유명 전시기획자와 관장, 예술가 등 20여명이 이사진으로 동참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와 큰손 컬렉터 4∼5명도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의사결정권은 없다.

미술관 지원과 자문 역할을 한다.

“진르미술관은 2006년부터 해외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국내에서 전시가 불가능했던 중국 작가들에 주목했다. 중국으로 들어오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던 작가들에 전시공간을 내주었다. 명성 있는 작가들의 첫 전시회는 반드시 진르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전통이 형성됐다. 이것이 진르미술관이 중국 당대미술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배경이 됐다.”

2006∼2007년 중국현대작가들의 작품가격이 폭등하면서 덩달아 진르미술관도 유명해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세계 유명작가들의 중국러시를 불러왔다. 이 시기 국제전은 세계미술계에서 진르미술관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중국 미술계 영파워로 주목받고 있는 가오펑(高鵬) 관장이 진르미술관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는 세계 미술의 중심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서 외국작가 소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 예술가 3인 초청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르미술관은 2011년부터 패션과 디자인 전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 제니스 코나렉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영국 황실의 의상을 책임지는 마리테스티노라 등과 협력하고 있다.

“영국의 황실이나 유럽의 유명한 인사들이 아시아에서 쇼를 계획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바로 진르미술관이다.”

진르미술관은 4년 전부터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참여하고 있다. 내년에는 해외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꾸밀 예정이다. 국제화의 보폭을 넒혀가고 있는 것이다. 후년에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도 동참한다.

“중국 당대예술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더 새로운 예술이 출현하길 희망한다. 진르미술관이 미술영재들을 선발해 1년간 해외 유학 장학금을 지급하고, 예술의 다양성을 위해 행위예술가와 소리예술가 등에 스폰을 해주는 이유다.”

진르미술관은 올해부터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바로 ‘7일간의 프로젝트’다. 예술가가 7일간 미술관에 머무는 프로젝트다.

“작가들은 7일 동안 미술관 공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7일 동안 이루어지는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 중국 당대미술 현황 소개를 부탁했다. 막힘 없이 그는 말을 쏟아냈다. 핸섬보이답게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중국 학자들은 중국 당대미술의 기점을 1985년으로 보고 있다. 개혁개방이 본궤도에 오른 1985년부터 중국 당대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3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2006년쯤에 이르러서야 중국 당대미술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술시장이나 경매에서 몇몇 작품들이 몇 천만 달러를 호가하면서부터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미술시장은 성황기였다.

“요즘 들어 중국 당대미술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새로운 세대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양의 당대예술을 접해 지금의 언어로 지금의 예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세대다.”

그는 “창조의 힘은 무지에 있다”고 강조한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이 되면 창조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이유다. 진르미술관이 5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전인 ‘중국미전’과 실험성이 강한 ‘실험예술전’에 기꺼이 공간을 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전시는 이제껏 민영미술관에서 개최한 적이 없다. 진르미술관의 위상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젊은 세대 작가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시장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부류와 정부에 비판적인 부류,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부류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것 또한 창조의 힘이다.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도전한다. 단순히 서양의 것이나 중국 전통을 따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에겐 전시작가 선정 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 있다. 따뜻함, 힘, 태도다.

“근래 들어 베이징의 공기오염, 사람과 사람 간의 불신, 그리고 예술을 이야기할 때 투자적 가치만 생각하고, 누구도 예술 본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술은 우리에게 따뜻함과 힘을 불어넣어주고 태도를 변화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11월8일부터 한국작가 3인 초청전인 ‘하나에서 셋으로’를 주관한다. 진르미술관이 외국작가를 중국 미술계에 소개하는 차원에서 마련하는 중점전시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한국의 예술가 백남준은 매우 뉴미디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왈종 작가는 한국의 옛세대 느낌을 가지고 있고 화법이 매우 한국스럽다. 한국의 민속과 유머를 가지고 있다. 김현정 작가의 공필화기법은 중국인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온다. 천진스럽고 세심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이들의 스타일이 모두 다 다르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동양미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강조했다. 아시아적 가치의 본연으로 돌아가, 서구를 이해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 경제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서 내면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미이다. 반성적이고 돌아보는. 이러한 것들은 아시아 종교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우리도 아시아적 가치로 회귀해야 한다.”

동서양 미술교육과 미술환경을 접했던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같은 영역 같은 주제’다. 동서양 교류의 키워드다.

“우리는 서양의 영역이 어디이고 서양의 주제가 어디인지를 인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서양의 교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야기하면 교류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서양을 이해하고 그들의 영역에서 그들의 주제를 이해해야지 그들과 교류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린 가오펑 관장은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때 한국, 노르웨이, 대만 등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베이징올림픽 이미지브랜딩에도 참여했다. 영국 런던예술학원에서 빅토리아시대의 채색판화 연구도 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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