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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994년 제네바 합의, 그 후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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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1 20:49:35 수정 : 2014-10-21 20: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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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거래’ 산물… 비핵화 허송세월
中 중재 활용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4년 10월 21일, 북한과 미국은 당시 55세의 강석주 외교부 제1부상과 48세의 로버트 갈루치 대북조정관을 협상대표로 내세워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냉전 종식기를 전후로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전격 선언하게 되고, NPT 회원국 중 유일한 불법적 핵보유를 묵과할 수 없었던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나름의 외교적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제네바합의의 핵심 내용은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와 ‘북·미 간 정치·경제적 정상화’ 사이의 타협이었다. 20년 전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할 의사가 있었는지, 또 미국은 북한과의 완전한 외교정상화를 진정으로 고려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양측 모두 처음에는 그런 판단이 섰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혹은 처음부터 반신반의하면서 일단 시간을 벌어보자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네바 합의는 몇 가지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협상의 주체가 미국과 북한이라는 사실이다. 한반도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인 우리의 목소리나 한반도 정치의 큰 손인 중국의 자리는 없었다. 외교관행의 차원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양자대화의 결과로 합의가 도출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핵 포기’와 ‘관계정상화’라는 양측에게 가장 매력적인 목표를 설정해 놓고, 쌍방 간에 일종의 거래가 전제가 된 외교적 타협이었다는 점이다. 외교학에서는 이를 ‘기능주의적’ 접근이라고 부른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관심사를 해결해 줌으로써 이러한 기능적 필요성의 성취를 기반으로, 두 국가에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을 관철시키게 돼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복잡한 함수관계가 현실적 조건과 맞아떨어져 ‘제네바합의’라는 결과물이 탄생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20년 전 미국과 북한에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던 ‘비핵화’와 ‘관계정상화’가 20년의 세월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목표가 된 것일까. 그래서 제네바 합의는 2003년 공식 파기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미국은 여전히 핵무기 확산을 막는 유일한 국제시스템인 NPT의 성공적인 작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북한 역시 다른 어떤 국가이익보다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왜 제네바합의는 파기됐고, 또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정부와 미국은 다양한 외교정책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데에도 또한 한반도에 근원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에도 모두 실패한 것일까.

박인휘 이화여대국제대학원 교수·국제 정치학
이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는 게 가능했다면, 제네바합의 이후 두 차례의 보수정권과 또 두 차례의 진보정권이 북한을 상대로 적용 가능한 모든 정책을 동원해 보았지만, 또 클린턴 행정부 8년, 부시 행정부 8년, 이제는 오바마 행정부마저 임기 내내 북한을 상대로 당근과 채찍을 모두 동원해 보았지만, 북한의 핵 고집을 꺾는 데에 실패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생존’과 ‘핵보유’를 동일시하는 북한의 세계관이 바뀌지 않는 한, 또 일정한 수준의 대외관계 위기를 상시로 조성해 외부세계와 최소한의 소통만을 유지하는 폐쇄성을 막지 못하는 한, 외부에서 북한에 가하는 정책적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을 탓하며 알아서 변화해 주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는 점이다. ‘거래’가 아닌 ‘제도적 장치’를 통한 대북한 외교관계가 일상화돼야 하고, 미국은 물론 20년 사이 몰라보게 강해진 중국을 우리의 우군으로 묶어두어야 한다. 아세안(ASEAN)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이 북한이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덜 느끼는 국제행위자를 더욱 활용해야 하며,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건강한 ‘통일정책 거버넌스’의 구축은 필수적인 과제라고 하겠다.

박인휘 이화여대국제대학원 교수·국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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