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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판교 사고’ 계기 기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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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1 20:57:03 수정 : 2014-10-21 20: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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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재난 대응 압축성장 후유증 탓
안전불감증 심각 국민의식 개조해야
2005년 여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덮쳐 시민 2541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당시 미국 국토안보부 책임자는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마이클 처토프였다. 카트리나로 혼이 난 국토안보부는 그즈음부터 재난 구호체계를 완전히 바꿔나갔다. 아내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꿨다 할 정도로 대수술을 단행했다. 위기 상황에 둔한 재난 구호 조직을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재난 대응 체계로 완전 개혁했다. 정통 법조인 출신인 처토프의 지휘능력이 제대로 발휘됐다. 법률밖에 아는 것이 없을 법조인의 어떤 능력 덕분이었을까.

미국의 법조인 출신 공무원은 한국식 법조인 또는 ‘법피아’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공 정책부분이나 제법 큰 규모 민간기업에서 일을 해내려면 법률지식만으로는 안 된다. 종합 사고능력은 물론 추진력 리더십을 두루 겸비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 대학원 과정의 로스쿨에서 집중 계발된다. 다시 말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통제가능한 문제 해결 솔루션을 건별, 맞춤별로 창의적으로 개발해내는 법적 마인드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고위직에 오른 한국식 ‘범생’ 법조인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렇게 길러진 미국식 로스쿨 인재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한국의 법은 닫힌 법이다. 법 테두리 밖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법 조항에 명시된 것 이외에는 허용되지 않고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법 조항에 없는 새로운 무엇을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이 창의적인 나라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에 반해 영미법은 법 조항에 없는 것은 제한하지 않는다. 창의적인 발상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닫힌 사고를 지닐 수밖에 없는 한국의 법조인들이 총리 장관 의원 등 사회 요직은 대부분 차지하고 우대받는다. 극히 일부에 국한하지만 법을 만드는 한국의 국회의원이나 운용하는 판·검사는 선민의식에 젖어 있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자기 보호적 권력을 휘두르는 특권층이란 비판도 많다. 창조를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자신의 사적 이익 앞에선 어쩌지 못하는 권력층의 변화를 거부하는 심리가 그것이다.

정승욱 사회2부장
일본에 대해 우리는 늘상 삿대질을 해댄다. ‘일본놈’이라고…. 후쿠시마 원전폭발 등 엄청난 재난으로 끔찍한 일을 당했음에도 우리처럼 막무가내로 제 몫을 차지하려고 나뒹굴진 않는다. 일본인 그들도 인간이고 감정이 없을 리 없다. 다만 그런 일이 남에게 불편을 끼치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서울 시내 전철에서 다이빙 승차는 거의 일상적이다. 그로 인한 발차 지연으로 열차 간격을 연이어 조정하는 바람에 수천 시민을 불편하게 한다. 자기 혼자 다이빙 승차해서라도 먼저 가야겠다는 염치없는 시민이나, 저만 살겠다고 수백명의 꽃다운 어린 학생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탈출한 세월호 선장이나 다같이 대형사고의 시작과 끝이다. 사고 날 때마다 정부 탓만 하면서 닥치는 대로 처벌, 대책을 세우라며 팔뚝질해 대는 한국인들…. 자신의 테두리만 꼭꼭 지키려는 일부 법조인 출신 정책결정권자들…. 너 나 할 것 없이 루쉰이 지적한 아큐(阿Q)들이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17일 저녁 일어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 사고 역시 우리의 한 단면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가까이서 보겠다고 환풍구 위에 올라선 팬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시공사는 어땠나? 환풍구 관련 법규정이 없다고 해서 공사를 임의로 했다. 누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안전 개념은 고사하고 공사비 아끼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민주화와 함께 경제만 풍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지난날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갈 때 치열한 체질개선 작업을 했었다. 우리는 지금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고산병 잠수병을 앓고 있다. 선진국 문턱을 넘으려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진다. 해답은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체질개선도 그 하나다. 조만간 출범할 재난총괄기구는 처토프의 능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정승욱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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