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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알린 언론의 양심 눈 감다

입력 : 2014-10-22 21:11:36 수정 : 2014-10-22 2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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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WP 前 편집인 타계 ‘워터게이트 사건’ 추적 보도를 지휘한 워싱턴포스트(WP)의 ‘전설의 편집인’ 벤저민 브래들리(93)가 21일(현지시간) 눈을 감았다.

WP에 따르면 브래들리 전 편집인은 1965년부터 편집국을 이끌면서 수도권 지역지에 불과했던 WP를 세계적인 권위지로 끌어올렸다. 특히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낸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WP의 명성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워터게이트 호텔에 위치한 미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불법 침입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백악관은 “3류 도둑에 불과하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낀 WP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브래들리 전 편집인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불법 침입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다. WP의 끈질긴 보도로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 전 대통령의 재선을 꾀한 미 중앙수사국(CIA)의 불법 감청 사건이라는 전모가 드러났다.

브래들리는 앞서 1971년에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과정을 담은 극비문서 ‘펜타곤(미 국방부) 페이퍼’를 보도하며 권력에 맞섰다. 주식 상장을 눈앞에 둔 WP의 이사진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반대했고 법원의 보도금지 명령까지 나왔지만 브래들리는 보도를 강행했다. WP는 이와 관련해 연방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내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크게 신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1일(현지시간) 별세한 벤저민 브래들리 전 워싱턴포스트 편집인(맨 오른쪽)이 1973년 4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캐서린 그레이엄 발행인(맨 왼쪽), 하워드 시몬스 편집국장(오른쪽 두 번째)과 함께 칼 번스타인(왼쪽 두 번째), 밥 우드워드 기자로부터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제공
1921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고인은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해군 학군단(ROTC)에 들어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인연으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도 친분을 쌓았다. 전역 후 뉴햄프셔 선데이뉴스, 뉴스위크지 기자로 일하다가 ‘뉴스위크’를 인수한 WP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발탁돼 1965년 WP 편집부국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재임 기간 WP는 워터게이트 보도를 비롯한 잇단 특종으로 퓰리처상을 18차례 수상했다. 부임 당시 연 100만달러의 손실에 시달리던 WP는 브래들리 체제에서 발행부수와 편집국 인력이 2배로 늘었다. 2013년에는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진정한 언론인인 그는 대중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대중에게 들려줬다”고 추모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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