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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들, 노숙인]추위·두려움·소음·악취…하룻밤도 잘 수 없었다

입력 : 2014-10-22 19:16:15 수정 : 2014-10-23 09: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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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체험 행사' 참여해보니 추위는 기본에 두려움·소음·악취까지 “너희가 노숙인 마음을 알아?”

지난 10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주최한 ‘일반인 노숙 체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박스 속에 들어가려는 순간 지나가던 노숙인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숙인을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총 5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종이 박스로 만든 ‘방’에서 밤을 보냈다. 박스 속에는 재활노숙인들이 만든 침낭이 놓여 있었다. 일부 노숙인들은 “잘 공간을 빼앗겼다”며 화를 냈지만, 몇몇은 체험 행사장에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참가자들을 지켜봤다.

침낭이 있기에 어느 정도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박스 밑에서는 스멀스멀 찬 기운이 올라왔고, 틈새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추위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컴컴한 박스 안에 누워 있자니 ‘혹시 누군가 갑자기 박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없었다.

‘거리 생활’은 모든 것이 불편했다. 사람의 발자국과 차량이 내는 소음도 잠을 방해했다. 땅쪽에 머리를 두고 있으니 온갖 소리가 빨려들어 오는 듯했다. 운동화를 바깥에 두면 얼어버릴 것 같아 박스에 넣어놓았더니 좁은 박스 안에 금세 고약한 냄새가 가득 찼다. 

이지수 기자(맨 오른쪽)가 지난 10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열린 ‘일반인 노숙 체험’ 행사에 참여, 박스 안에 누워 있다.
성북예술창작센터 제공
박스 안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자꾸만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기분이 들어 몸이 간지러웠지만, 조금만 뒤척여도 박스가 흔들려 팔을 움직이는 데 한참 걸렸다. 왼쪽 옆구리 쪽을 긁다가 박스를 건드려 이음매에 붙인 테이프가 떨어지자 순식간에 찬 바람이 몰려와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잠을 포기하고 바깥에 나가 노숙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 여성 노숙인은 “씻을 곳도 없고 잠을 푹 잘 수 없어 괴롭다”며 “어쩌다 돈이 생겨 찜질방에 가고 싶어도 남루한 행색 때문에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60대의 한 남성 노숙인은 “몸이 아픈데 길에서 자니 병은 더 심해지는데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는다”며 “그나마 요즘은 덜 추운 편인데 한겨울에는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다시 박스 안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이날 눈을 붙였던 시간은 고작 1∼2시간에 불과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행사장 한쪽에 놓인 난로에 서서 손을 녹였다. 초가을인데도 날씨가 추워 몸이 뻣뻣하게 굳은 것이 느껴졌다. 한기를 없애기 위해 컵라면을 먹었으나 빈 속에 찬바람을 맞으며 먹으니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니 ‘진짜’ 노숙인들은 맨발로 자고 있었다. ‘“술 없이 맨 정신으로는 거리에서 버티기 힘들다”던 한 노숙인의 말도 떠올랐다. 매일 거리에서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잠드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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