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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생명, 詩語에 담고 삶의 마지막 숙제를 마치다

입력 : 2014-10-23 19:48:05 수정 : 2014-10-23 19: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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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시인협회장 故 김종철씨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 삶과 죽음은 늘 한통속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죽음의 입김이 강한 듯하다. ‘세월호’가 길게 억장을 끊더니 환풍구 위 추락이 이어진다. 모두 창졸간 닥친, 어이없는 죽음이어서 더 서럽고 안타깝다. 예견된 죽음이라고 편안할 리 없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일은 역시 범상치 않은 마지막 숙제다.

“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던 그가/ 팔소매를 훔치며/ 체면도 없이 그저 펑펑 울 때는/ 참, 젊어 보였다/ 나는 그저 흐느끼는 어깨만 토닥였다/ ‘아, 나는 언제 펑펑 울어보나’”

펑펑 울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 김종철(1947∼2014) 시인이 그 사람이다. 그는 소문보다 빠르게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침묵이 변명이 되어버렸는데, 그가 꾸리는 출판사 식구들에게 소문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회사 살림만 우직하게 꾸려왔던 전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울었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그는 ‘펑펑 울다’는 시를 지었다. 최근 출간된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문학세계사)에 실렸다. 그의 ‘회사’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국내에 독점 번역 출간해 1000만부 이상을 판매한 ‘문학수첩’이다. 애초 출간 제안서가 여러 출판사를 떠돌다 거부당한 끝에 문학수첩에 당도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두 해 간격으로 신춘문예에 두 번(한국일보·서울신문)이나 시로 당선돼 타고난 언어감각을 과시해온 시인이기도 하다. ‘못에 관한 명상’이라는 첫 시집 이래 그는 ‘못의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못’을 모티프로 시 세계를 펼쳐왔다.

“소문만으로도 더 빨리 중환자가 되었다/ 안됐구먼, 그 팔팔한 양반이!/ 조심스레 격려 전화와 문자가 찍혔다/ 힘내, 파이팅!/ 나는 종목도 없는 운동선수로 기재되었다./ 이길 수 없는 경기에만 나오는 선수다// 그중 가장 살맛나게 하는 소문은/ 이제 끝났어, 살아오면 내 손에 장 지지지!/ 오랜만에 듣는 행복한 저주였다/ 일찍이 나를 잉태했던 어머니는/ 가난에 겨워 조선간장 몇 사발 들이켰지만/ 그래도 세상 구경한 나였지 않은가/ 오냐, 네놈부터 장 지지게 해 주마!”(‘오늘의 조선간장’)

‘못의 사제’로 살다간 김종철 시인. 그가 암과 싸우며 죽음을 예감하던 시점에 딸(윗줄 왼쪽)과 아내와 더불어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그가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항암치료를 거듭한 끝에 그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 3월 시인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를 다시 살게 한 것은 ‘안 됐구먼, 그 팔팔한 양반’이라는 ‘행복한 저주’였다고 썼다. 그를 살맛나게 한 것은 울음보다 오기였던 셈이다.

“퇴원이다/ 안녕 안녕/ 덕담하며 병원 문턱을 넘었다/ 몸 버리면 세상을 잃는다는/ 일상의 처방전/ 잘 있다, 괜찮다고 나는 사인했다// 월요일 젖은 몸 말리고/ 급히 지퍼 올리다가 목에 걸린/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생명은 한순간 뜨겁다”(‘안녕’)

뜨거운 생명은 종내 목에 걸리고 말았다. 시인협회 회장으로 ‘시의 달’ 제정, 시인의 마을 조성, 남북시인대회, 시문학 전문지 부활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암의 재발과 악화로 지난 7월5일 이승을 떠났다.

“유작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밤새 고치고 다듬는다/ 실컷 피를 빤 아침 하나가/ 냉담한 하느님과 광고를 믿지 않은/ 자들만 분리수거해 갔다/ (…) /몸만 남은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순명하다가/ 무릎 꿇는 또봇의 새 아침/ 쩍 벌어진 애도의 쓰레기통이나 뒤져/ 악담 퍼부은 유작들만 분리수거되는 날이다”(‘유작으로 남다’)

이번 시집은 그가 죽음을 직면한 상태에서 스스로 유고들을 선별해 1부에서 5부까지 분류까지 마친 결과물이다. 1부에는 암선고를 받은 이후부터 임종 직전까지 투병 중의 심정을 담은 시편, 2부는 일본군 위안부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못박힌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시편, 3부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짚어 낸 시인의 부드럽지만 강직한 시선의 에스프리들, 4부는 가톨릭 신자로서 성지순례나 해외여행 중에 포착해낸 마음의 풍경과 종교적 심상들, 5부에는 그간의 삶 속에 떠오른 그리움의 편린들과 사람살이에 대한 관조적 시선을 담았다. 그가 죽기 2주 전, 2014년 6월22일 오후 7시22분 연세 암병동에서 둘째딸의 손을 빌려 정리한 마지막 시편은 이렇다.

“몸과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곳/ 아내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와 시안에도 들렀다/ 내 생의 마지막 투병하는데/ 절두산 부활의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 신혼 초 살림 장만하듯 아내와 반겼다”(‘절두산 부활의 집’)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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