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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80년대 몸으로 부대낀 평범한 여대생의 솔직한 기록

입력 : 2014-10-23 19:46:32 수정 : 2014-10-24 06: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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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장편소설 ‘청동정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절창이었다, 1994년 나온 최영미의 시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절창의 조건은 시대 분위기와 작자의 내밀한 정서가 결합되지 않는 한 나오기 어렵다. 최영미(53·사진) 시인은 1980년 대학에 들어가 뜨거웠던 시절을 통과한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문제는 시대였다. 자매들과 싸우며 자신의 속옷을 쟁취하고 날선 자존심으로 세상을 투정하던 ‘철없던’ 그네가 운동권의 일부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월을 살아야 했던 저간의 기록이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청동정원’(은행나무)에 담겨 나왔다.

도서출판 은행나무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오늘의 문학’에 1년 동안 연재됐던 소설인데, 연재 당시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다. 이미 1980년대 이야기란 어느 세대에도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후일담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지대의 이야기는 강석경의 ‘숲속의 방’에서 이미 회자됐고, 수많은 그 시절 상처와 회고담은 널려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광주항쟁을 직접 겪지도 않는 소설가 한강이 부모 세대의 한숨만으로 ‘소년이 온다’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으니, 더 이상 직접 그 시절을 겪었다는 명분만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일별해보니 최영미의 장편은 색다르다. 솔직하다는 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1980년대에 혁명과 개혁과 유토피아를 꿈꾸며 후배와 연인을 닦달하던 젊은 것들의 이면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날것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최영미 장편의 최대 장점은 날것으로, 흥미롭게, 위선을 혁파하는 통렬한 문체에 있다. 소설 속에서 그네에게 보냈던 남자의 편지.

“우리가 겪은 아픔은 시대적 산물이었으나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결단과 투쟁은 개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올곧은 한길을 더욱 깊숙이 찾아들어갔으며, 또 어떤 사람은 참담한 패배를 곱씹으며 입산한 수도승처럼 아무 말 없이 매일 오가는 김밥의 옆구리를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이 논리의 직격과 논리의 아름다움에 처녀와 결혼을 빼앗겼지만, 이제 그네는 다시 말할 수 있다. 늦은 듯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1980년대 청춘의 고갱이, 어느 세대에겐 고고학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최영미의 이 장편이 날것으로 증언하는 시대의 사랑과 정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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