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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사람 잡는 방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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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3 20:25:36 수정 : 2014-10-24 09: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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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세계 최초의 방탄복 개발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은 서양의 침략에 맞서 방탄복 개발을 명했다. 대신들은 조선군의 화승총을 발사해 실험을 해가며 무명천 30장을 덧댄 세계 최초의 방탄복(면갑) 개발에 성공했다. 화승총탄을 거뜬히 막아내는 면갑을 보면서 대원군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음은 물론이다. 조선군의 전투력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을 터다.

그것이 당랑거철의 호기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선군은 1871년 6월 강화도에서 벌어진 미군과의 전투(신미양요)에서 243명의 전사자를 내고 대패했다. 미군 전사자는 3명에 불과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소홀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사거리가 120m였던 화승총으로는 무명천 30장이 뚫리지 않았지만 미군 소총은 사거리가 400∼900m였다. 탄환의 위력이 달라 면갑은 무용지물이었다. 외국군의 선진 화기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이 방탄복을 만들었으니 이런 낭패도 없다.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한 승리. 전투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그래서 칼, 창, 화살로 싸우던 시대에도 갑옷 업그레이드에 사활을 걸었다. 가죽미늘과 쇠미늘, 쇠고리, 종이미늘 등 신소재가 선보였으나 완벽한 제품은 없었다.

영국의 계관시인 월터 스콧은 “하늘은 때를 안다. 총을 맞고 안 맞고는 운명에 달렸다”고 했다. 총을 맞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운명론적 시각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부위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한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된다. 심장 부근으로 총탄이 날아왔으나 군복 상의 주머니에 넣어둔 수첩 덕에 목숨을 건진 병사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스릴이 있다. 천우신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육군 특수전사령부가 장병들에게 보급한 방탄복 2062벌이 북한군의 AK74 소총에 뚫리는 불량품이라고 한다. 예하부대로부터 방탄기능을 상실한 제품이라는 보고를 받고도 13억원어치나 구매해 보급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군 간부들과 군피아의 검은 거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람 잡는 방탄복을 입고 천우신조만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 장병들. 부하의 안전 따윈 관심 없는 ‘간 큰’ 간부들. 딱 군기 빠진 당나라 군대의 모습이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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