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밥만 축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퇴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용퇴 입장을 표명했다. 7·14 전당대회 결과 3위로 최고위원회에 입성한 지 102일 만에 스스로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그의 사퇴 선언에 놀란 김무성 대표는 회의 직후 “이해가 안 가는 사퇴인데 설득해 철회하도록 하겠다”며 만류 의사를 밝혔으나 김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번복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김 대표는 이날 저녁 여의도 한 식당에서 김 최고위원을 우연히 만나 사퇴를 간곡히 만류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40여분간 면담에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그만둬서는 안 된다”며 사퇴 반려를 끝까지 설득했으나 김 최고위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의 사퇴는 김무성 체제가 개헌과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로 청와대와 부닥치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결행된 것이어서 당 안팎에서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활성화법안 처리 지연 등을 이유로 최고위원직 사퇴 의시를 전격적으로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남제현 기자 |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많다. 여야는 오는 27일 국정감사 종료 후 상임위별로 경제활성화 법안을 본격 심의할 예정이다. 사퇴하려면 이를 지켜보고 해도 늦지 않다. 이 때문에 표면적 이유보다는 잠룡으로 거론되는 김 최고위원이 여권 내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김 대표를 추월하기 위해 일종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흐름이다. 김 최고위원은 사퇴의 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살리기 노력을 평가하며 김 대표를 겨냥해 “오히려 거기에 ‘개헌이 골든타임’이라고 하면서 대통령한테 염장을 뿌렸다. 아마 (대통령이) 많이 가슴 아파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헌론자이면서도 개헌 발언 파문을 일으킨 김 대표와 각을 세워 박 대통령의 눈에 들어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자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남제현 기자 |
일각에선 김 최고위원과 친박(친박근혜) 진영의 ‘사전 교감설’까지 제기된다. 차기를 노리는 김 최고위원과 김 대표를 손보려는 청와대가 계산이 맞아 미리 짜고 일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인 당에서 ‘김태호의 난’, ‘김무성 흔들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비주류 중심의 김 대표 체제에 틈이 생겨 주도권과 장악력 저하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어서다.
향후 사태의 관건은 추가 이탈자 여부다. 친박 인사들은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펄쩍 뛰고 있으나 친박계 최고위원의 동조사퇴가 이어지면 상황은 확 달라진다. 2011년 말 홍준표 당시 대표 체제가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의 줄사퇴로 무너졌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당장 김 대표 체제의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당청 갈등이 지속되면) 김 대표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새누리당은 한 달 이내에 후보 신청 접수를 하고, 1000명 이내로 구성되는 전국위원회에서 새 최고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이 경우 또 한번 친박계와 김 대표 측 간 치열한 격돌이 예상된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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