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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현안 꿰고 있어야 업무 수행… 상임위 2년이면 전문가 다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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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5 06:00:00 수정 : 2014-10-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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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사관’ 국회 속기사의 세계
“속기한다고 하면 손가락이 빛의 속도로 움직여야 할 것 같죠? 아닙니다. 손가락보다 머리가 더 빨라야 해요.”

국회에서 일하는 한 속기사에게 자질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속기사’라고 하면 말을

그대로 받아적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고정관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손가락 놀림보다 대화의 흐름과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실제 속기사들은 담당 상임위의 현안을 줄줄이 꿰고 있다. 발언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인 탓에 평상시에도 사람을 무섭게 노려보는 ‘나쁜’ 습관도 이들에겐 흔했다.

국회 의정기록과 이순영 속기과장은 24일 “최대한 신속, 정확하게 회의록을 발간해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속기사가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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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이 대목…끝나도 일의 연속

한 해 지은 농사를 수확하는 가을에 많은 일손이 동원되듯 속기사들도 10월 국정감사 때 가장 바빠진다. 전국 각 지의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상임위의 국감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속기사들은 상임위 일정에 따라 팀을 짜서 국감에 임한다. 국감이 끝나도 바로 내년도 예산안 심사와 상임위별 법안 심사가 이어져 숨 돌릴 틈이 없다.

회의가 끝나도 속기사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속기록을 바로 회의록 체제에 맞게 바꾸고 정리해야 한다. 야근이 일상이 되는 것은 물론 주말 근무도 불가피하다. 매년 하반기 내내 강행군인 셈이다. 속기사들이 “여름 휴가가 지나면 가을, 겨울은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또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같은 국정에 중대한 사안이 터졌을 때 갑자기 임시국회가 소집되거나 국정조사가 시행되면 속기사 업무도 추가로 늘어난다.

비회기 중이라고 해서 여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상임위의 지난 속기록을 보면서 빠진 부분을 다시 점검하고 신문 등을 통해 시사 공부를 한다. 생소한 무기 이름, 어려운 경제용어, 각종 경제 수치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다. 의원들 회의에서 툭툭 내던지는 전문용어를 속기사도 알고 있어야만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속기사들도 통상 한 상임위를 2년 정도 거치면 웬만한 전문가 뺨칠 정도가 된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의 고용노동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속기사들(앞줄)이 질의하는 의원의 발언을 기록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동시다발적 고성 오가면 ‘멘붕’


속기사의 업무 강도는 회의 분위기에 따라 요동친다. 회의에서 고성이 오가면 현장 관계자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지만, 속기사들은 속칭 ‘멘붕’ 상태가 된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는 말들을 다 받아적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의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 화법,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를 듣다보면 속으로 “헐∼”이라며 난감해 하기도 한다.

국회가 파행을 밥 먹듯이 하는 것에 국민의 짜증지수가 높아지듯, 속기사에게도 ‘악몽’이다. 한 속기사는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회의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정말 최악”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국회 선진화법 도입으로 그나마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그는 “아무래도 돌발 상황이 줄어들어 편해졌죠”라며 웃었다.

◆“말 토씨 하나가 정쟁으로 비화되기도”

우리나라는 외국보다 속기의 중요성이 크다고 한다. 의원 발언의 진위 여부를 두고 시비가 붙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번 국감에서도 설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 큰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은 ‘속기록’을 증명자료처럼 내밀었다. 말의 토씨 하나 때문에 여야 정쟁으로 비화되는 일도 허다하다. 속기사는 매 순간 긴장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속기하려 애쓴다.

특히 ‘국회 속기사’는 속기사 중의 속기사로 일컬어진다. 국회 속기록이 지방의회는 물론 법원 등의 작성 편람 기준에 표준이 되는 만큼 자부심도 남다르다.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도 아까지 않는다. 영상회의록과의 차별화를 위해 국회 속기사는 별도의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늘 연구한다고 한다.

그런데 속기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썩 좋지 않은 편이다. 전문직으로 인식되기보다 ‘기능인’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수준도 저조하다. 이 과장은 “우리나라는 기록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그것이 역사”라며 “속기사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껴야 하고 외부에서도 중요성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채연·박영준 기자 w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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