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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닫혀있는 '응급구호방'…막혀있는 공무원 인식

입력 : 2014-10-24 19:21:19 수정 : 2014-10-25 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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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있는 ‘응급구호방’… 막혀있는 공무원 인식
노숙인 시설 폐쇄 이유 문의에
“밖에서 자는게 쾌적” 황당 답변
상시 개방땐 뒤치다꺼리 걱정
“기자님, 밖에서 자 봤어요?”

서울역 지하도에 ‘노숙인 응급구호방’이 있다. 이 방은 혹한기(11∼3월)와 혹서기(7∼8월) 야간에 노숙인들이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나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밤기온이 쌀쌀한데도 이용할 수 없다. 낮에는 자활작업장으로 쓰이지만, 오후 6시 이후에는 문을 걸어 잠근다. 지난 14일 서울시 한 공무원에게 왜 문을 닫는지 문의하자 그의 반응이 의외였다.

이 공무원은 “(응급구호방은) 시설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며 “요즘 같은 날씨에는 오히려 밖에서 자는 것이 더 쾌적하다”고 말했다. 혹한·혹서기가 아닐 때는 길거리가 더 쾌적하기 때문에 응급구호방을 1년 내내 운영하지 않는다는 대꾸에서 말문이 막혔다. 그의 어이없는 답변에서 서울시가 노숙인을 대하는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21일 밤 서울 중구의 한 건물 지하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응급구호방에 들어갈 수 없는 노숙인들이 선택하는 곳이 어디인지 쫓아가 봤다. 이들은 추위를 피해 서울역 인근 민간 건물의 지하통로에 몰려들었다. 서울시에 문의한 날에도 100여명의 노숙인이 그곳에 모였다. 건물주는 그들이 남긴 오물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떠안고 있었다.

서울시에 기자가 “차라리 응급구호방을 계속 개방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말하자, 이 공무원은 잠시 망설이다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고 답했다. 꽉 막힌 시정의 한 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응급구호방을 항상 개방할 경우 노숙인들이 재활시설에 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재활시설에 보내 자활을 꾀한다’는 서울시의 노숙인 정책과 맞지 않는다. 노숙인이 양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길거리에서 자는 게 더 쾌적하다고 생각하는 공무원의 머릿속에는 뒤치다꺼리가 더 걱정이었을 것이다.

서울시 홈페이지에는 공무원 업무 중 하나로 ‘노숙인 인식 개선’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정작 인식 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노숙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 같지 않았다. 통계상 노숙인 숫자를 줄이는 것으로 인식이 개선될지 의문이다. 닫힌 응급구호방만큼이나 공무원의 인식도 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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