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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안중근의 어깨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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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8 21:09:14 수정 : 2014-10-28 21: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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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눈이 시린 하늘빛과 고운 단풍잎에 취해 사흘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10월26일 그 역사의 기억 말이다.

105년 전 그날도 가을 단풍이 고왔을까. 아마도 이국땅의 스산한 바람이 망국의 청년을 맞았으리라. 서른살 청년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 도착한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침략의 원흉을 맞는 요란한 군악소리에 안중근은 분개했다. ‘어찌하여 죄 없는 백성은 곤경에 빠지고 이웃 나라를 강탈한 자는 저같이 활보하는가!’

청년은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러시아 관리들이 에워싼 한 무리 중에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보였다.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뒤를 돌아 고령의 일본인을 향해 다시 세 발을 쏘았다. “대한만세! 대한만세! 대한만세!”

하얼빈 의거는 안중근이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침략자를 응징하는 것이었다. 그가 굳이 7발이나 총알을 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급박한 순간에도 안중근은 ‘만일 내 총알이 무고한 사람을 맞혔다면 큰 낭패가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침략자 이토의 생명을 놓고도 며칠을 고뇌로 보냈던 그였다.

안중근은 사형선고를 앞두고 홀로 자신과 대면했다. 감옥 창살 사이로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고향의 나지막한 언덕과 아내, 자식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갔다. 힘없는 백성으로 살아온 짧은 생애,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사형은 피할 수 없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선고가 있는) 모레면 일본국 4700만 인격의 무게를 달아보는 날이다. 어디 경중(輕重) 고하(高下)를 지켜보리라.’ 그는 이런 자세로 당당히 죽음과 맞섰다.

안중근은 죽어서도 조국의 독립을 소망했다. 사형이 확정되자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조국으로 옮겨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유언장에다 이렇게 적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이 바라던 조국의 독립이 이뤄진 지 어느덧 예순아홉 해.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오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망국의 청년이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출 만한가.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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