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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광대들 선문답에 담긴 생의 깊은 진리

입력 : 2014-10-30 20:59:05 수정 : 2014-10-30 20: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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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 “저기 저게 내가 눈 똥일세.”

“그런데 혜공 자네 똥은 움직이네? 자세히 보니 똥이 아니라 물고기 같은데. 아니 저 놈이 헤엄쳐 도망가는 거 아닌가?”

“어허 참 신기한 일일세. 내 똥이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다니. 똥이란 게 뭔가? 먹은 것들이 죽어 나온 것이지. 그런데 죽어 있어야 할 똥이 어찌 살아 헤엄을 치나?”

“똥을 보면 자네가 보이지. 그 안에 자네의 모든 게 들어 있네. 모양, 색깔만 봐도 자네 기분이 어떤지, 몸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 자네가 뭘 원하는지도 말야. 지금 저 똥은 바로 자네 자신이야.”(극 중에서)

혜공과 원효가 시냇가를 헤집으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장난을 쳤다.

‘여시오어(汝屎吾魚)’.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연극만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연출가 배요섭이 쓴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사진)이다. 여시오어. 혜공과 원효 사이에 있었다는 이 말은 두고두고 풀어야 할 화두다. 똑같이 하루 세 끼 밥을 먹고도 어떤 사람은 냄새를 풍기며 살고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삶을 일군다. 하지만 이 말의 속뜻은 내 똥과 내가 잡은 물고기가 하나임을 깨닫는 데에 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너와 나로 편가르기 하지 않는 것이 혜공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무대는 스님광대들이 꾸민다.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살짝 비켜서 있는 이들, 광대이자 스님인 이들은 제 몸과 주변 사물을 빌려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들의 몸짓은 기이하고,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특이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들이 직접 삼국유사 속 스님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함께 작품을 완성해 가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확고하게 존재하는 어떤 힘에 대해 탐구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만 각종 매체들이 자극적인 방식으로 수없이 반복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 기이함을 잃어버리도록 만든 일들을 새롭게 살펴봄으로써 그 기이함을 되살려내고자 한다. 황당무계한 농담 속에 담긴 깊은 깨달음, 기이한 스님광대들의 독특한 선문답이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일연은 오랜 세월 국존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현실감각이나 정치감각이 탁월했을 것이다. 그는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이르러 기이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역사서를 썼다. 일연에게 역사란 이러한 기이한 힘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연출가 배요섭은 이 같은 관점에서 지금, 여기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말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불교의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이분법적인 인간의 언어를 가뿐히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면서도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는 소박한 세계이다. 매일 산 것들을 죽여 입에 넣고, 아래로는 똥을 누어야만 살 수 있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몸, 성스럽지도 속되지도 않은 인간의 ‘몸’이 작품의 언어이자 주제가 된다.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 전체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말하는 연출가는 배우들의 훈련과 연습과정을 수도승들의 수행과정에 비유한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강원도 화천의 연습실에서 마치 고행을 하듯 작품을 준비했다. 스님이기도, 광대이기도, 배우이기도 한 이들은 우리에게 몸과 영혼과 언어로,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김상현의 삼국유사이야기’에 따르면 혜공과 원효의 선문답 ‘여시오어’는 이렇다. 포항의 운제산 동쪽 항사동에는 천 수백 년 오랜 세월 등불을 밝혀오는 오어사(吾魚寺)가 있다. 본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 하루는 고승과 젊은 수행자가 어울려 항사동 시냇물에서 고기를 잡아먹었다. 그러고는 돌 위에 걸터앉아 대변을 보았다. 혜공이 변을 가리키며 ‘여시오어’라고 희롱했다. 이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지만 ‘너는 똥을 누고, 나는 고기를 누었다’는 해석이 이 설화의 구조상 가장 적절할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물 속에 똥을 누었더니 그 물고기가 문득 살아났기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 고기라고 했다는 설화다.

11월 9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다. 1688-5966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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