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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사제관계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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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30 20:40:32 수정 : 2014-12-07 13: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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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강진으로 유배온 다산 정약용에게 열다섯 살짜리 소년 황상이 물었다. “저처럼 머리 나쁘고 앞뒤가 꽉 막히고 분별력이 모자란 사람도 공부를 할 수 있나요?” 정약용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단다. 기억력이 뛰어난 이는 공부를 소홀히 하고, 글짓기가 쉽게 되는 이는 들뜨게 되는 폐단이 있고, 이해력이 빠른 이는 곱씹지 않아 깊이가 없단다. 그런데 너에게는 그게 모두 없구나. 너 같은 사람이라야 공부를 할 수 있다. 부지런히 공부하여라.”

정약용의 이 말은 촌부의 아들 황상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공부한 황상은 문재로 이름을 날려 정약용이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었다. 정약용을 끝까지 진심으로 섬긴 제자 또한 황상이었다.

200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로버트 그럽스. 그의 인생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이도 스승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농업과학을 전공하던 그럽스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한 스승의 권유를 받고 유기화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고교 농업교사를 하려던 저를 연구소로 데리고 와 화학자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셨지요.” 연구 실패로 좌절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 준 이 역시 스승이었다. 스승에 대한 그럽스의 존경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스웨덴의 노벨상 수상장에 가족 외에 유일하게 스승을 초청했다.

사제관계가 신뢰와 존경으로만 엮여지지 않으니 문제다. 국내 대학원생의 45.5%가 지도교수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한다. 대학원생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다. 일부 몰지각한 교수의 ‘갑질’은 목불인견 수준이다. 폭언과 성희롱, 논문 실적 가로채기가 비일비재하다. 제자에게 자녀의 무료 과외교육을 시킨 교수도 있었다. “석사과정은 공노비, 박사과정은 사노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학원생의 애환을 표현한 우스개가 있다. 교수들 모임에서 한 교수가 문제를 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아세요?” 다들 답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는데 한 교수가 말했다. “조교시키면 됩니다.” 웃음은 나오지만 입맛은 쓰다. 논문 심사, 진로 등 대학원생의 현재와 미래가 지도교수에게 달려 있어 피해자의 65.3%는 억울해도 그냥 참는다고 한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스승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다. 그 말에는 존경과 신뢰의 뜻이 담겨 있다. 일부 대학교수의 갑질이 군사부일체의 사어화를 재촉하고 있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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