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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법리와 법감정 사이 대한민국은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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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01 06:00:00 수정 : 2020-10-06 14: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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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고통은 생각 안 하나" vs "감정 앞세워 여론재판 안돼"

“어찌 오원춘 따위에 고작 무기징역을….”(국민들)

 

“오원춘한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판사들)

 

2012년 10월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기정)가 오원춘에 대한 1심 사형 선고가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하자 한 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국민 대다수가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하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서울 서초동의 판사들은 냉담했다. 법원에서는 형량을 통일하기 위한 ‘양형기준’에 따라 사건을 기계적으로 대입해 선고하는데, 오원춘 사건은 양형기준에 따르면 무기징역을 선고해도 된다는 해명이었다. 법감정과 법리의 충돌은 결국 법리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수원 여성 납치 살해사건을 저지른 오원춘.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형·무기형 1심 선고 대폭 감소

 

판사들이 국민 법감정과 달리 사형을 내리기 꺼리는 경향은 최근 1심 사건 선고 동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1심 형사사건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은 살인죄를 저지른 2명뿐이다. 2004년에는 살인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모두 8명이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데 비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숫자다.

 

무기징역과 무기금고를 합한 무기형 선고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살인 등으로 27명이 무기형을 선고 받았는데, 10여년 전엔 한 해에 50∼90여명 무기형을 받았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살인범과 성폭력범에 대한 무기형 선고 역시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인범에 대해선 2000년대만 하더라도 한 해에 20∼40여명을 무기형을 선고했고 성범죄사범에 대해서도 20명 넘게 무기형을 선고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고작 1∼2명 선에 그치고 있다.

 

판사들은 “법대로 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살인·성폭행 등 흉악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선고가 쏟아지는 것을 두고 수사기관은 불만이다. 판사들이 치안력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부 판사들은 ‘사형 선고를 앞두고 고뇌하는 법관’으로 연출해야 한다는 ‘클리셰’(상투적 행동)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법리를 빙자해 고심하는 척 흉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판사들이 서류 작업만 해서인지, 무참히 죽어간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는 일부 설득력이 있다. 법원에서는 얼마 전만 해도 재벌 총수들에게는 ‘3·5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3·5제는 수천억∼수조원 단위 비리로 재벌 총수들이 걸려들었더라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관례를 말한다. 이를 근거로 판사들이 말하는 ‘법리’란 사실상 누가 피의자인지에 따라서 고무줄처럼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일었다. 법조계에서는 판사들의 이런 힘을 ‘봐주기 권력’이라고 분석한다. 검찰과 경찰 같은 수사기관이 ‘수사권력’을 행사해 피의자를 잡으면, 판사들은 ‘봐주기’를 통해 피의자에 대한 사법부의 힘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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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감정 앞세워 여론재판 우려”

 

판사들은 “법대에 앉아 보면 다르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함부러 감정에 휘둘려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판사들이 법리를 통해 내린 결론이 결코 법감정에 따른 형량보다 낮지 않다고 강조한다.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들어가는 국민참여재판이 판사들의 판결보다 형량이 비교적 낮다는 법조계의 대체적 견해는 판사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사건 기록을 직접 읽어보고 피의자의 반성 태도 등을 자세히 따져보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 판사들 보다 선처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법감정’을 전면에 내세운 ‘여론’이 법원에 압력을 가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양창수 전 대법관은 지난 3월 한 기고문에서 “성범죄에 대한 양형이 (내가) 대법원에 온 2008년 이래 많이 늘었다”며 “양형에서의 변화가 법관들이 숙고한 결과인지, 개정된 법률 때문인지, 혹은 양형기준표를 반영해서인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보이는 여론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론의 압력에 기인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양 대법관은 “만일 언론의 압력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는 우리 법관이 행하는 심판작업의 실체에 대해 기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할 일”이라면서 “여론이라는 것이 법관에게도 먹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법관에 대한 유·무형의 압박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판사 역시 “강용석 전 국회의원이 술자리에서 한 발언으로 법정에까지 왔을 때 ‘이게 과연 법으로 처벌할 일인가’라고 의문스러워하는 법관들이 많았다”면서도 “당시에는 사회 분위기상 도저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도 “최근 들어 몇몇 범죄는 판사가 일방의 단순 주장만을 갖고 유죄를 인정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면서 “아무래도 판사들이 여론을 의식해서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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