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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물불 가리지 않고 바빠지는 때가 있다. 바로 선거구 획정 때다. 생존의 대회전이 시작되면 같은 당 의원들끼리도 예사로 얼굴을 붉힌다. 19대 국회의원 선거구를 논의하던 2011년 12월에도 그랬다. 선거구 획정위는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의 부산남갑 지역을 합구 대상으로 내놓았다. 부산 남구의 당시 인구는 29만7000여명으로 상한선 미달이었다. 김 의원은 획정위원들을 “헌법 정신도 모르는 자들!”이라고 맹비난했다. 인구가 선거구 획정의 최고 가치라는 주장이었다. 김 의원 지역구는 획정위에서 죽었다가 정개특위에서 부활했다.

경남 남해·하동 인구는 선거구 획정 기준이던 2011년 6월31일 10만1669명에 불과했다. 1년 전부터 주소지 이전 정책을 열심히 폈으나 겨우 1000명 정도 증가에 그쳤다. 마지막 방법이 있었다.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은 지역 지지자들을 동원, “지역 대표성 보장”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연좌투쟁을 벌였다. 여 의원은 살아남았지만 지역구는 인구가 더 많은 사천시와 통합해야 했다. 전남의 담양·곡성·구례 지역구 인구는 다 합쳐도 10만5000여명에 불과했다. 헌법정신을 내세울 인구도 부족하고, 주민들의 상경 투쟁도 없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담양은 함평·영광·장성군에 합쳐지고 곡성은 순천시에, 구례는 광양시에 붙여졌다. 무슨 껌도 아니고, 농촌 지역의 선거구 신세가 그러하다.

헌법재판소는 그제 현행 선거구 획정 기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인구 상하한선을 3대 1에서 2대 1 이하로 바꾸라고 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은 인구 중심으로 선거구가 획정돼야 한다는 데 손을 들어 주었다. 비유하자면 경남 여 의원 대신 부산 김 의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소수의견을 낸 박한철, 서기석, 이정미 재판관은 “인구편차를 조정하면 지역대표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농어촌 의원 수는 감소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현실의 측면에서, 통찰력에서 소수의견이 더 와 닿는다. 헌법재판소는 법리만 따질 게 아니라 시대 상황도 같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촌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시절이다. 도시사람에겐 동네 너댓 곳에 한 명의 국회의원을 주고, 농어촌에는 군 너댓 곳에 겨우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니 박탈감은 더 커지게 됐다. “이런 것이 헌법정신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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