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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직도 소설 같은 걸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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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07 21:17:42 수정 : 2014-11-07 22: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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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 한 권은 한 생애의 경험 줘
책 읽지 않으면 삶은 더 황폐해져
지난달 26일 프랑스에서 눈길을 끄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한 방송국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논란에 휩싸인 일이다. 요약하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모디아노의 최신작에 대해 묻는 질문에 “지난 2년 동안 소설을 한 권도 읽지 못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펠르랭의 이 고백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그녀는 2년6개월 전인 2012년 5월 올랑드 대통령 취임 이후 디지털경제장관과 통상국무장관을 차례로 역임하고 올 8월 개각과 함께 문화장관으로 취임했다. 장관으로서 공무를 수행하느라 소설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프랑스 사회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는 달아올랐고, 일부 언론은 기사를 썼다. 문화평론가 아스콜로비치는 펠르랭 장관을 비난하는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프랑스의 문화 가치를 알지 못하는 ‘교양 없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펠르랭에게 모디아노의 문체를 파악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장관직에서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접하면서 사실 좀 놀랍기도 하고, 문화의 가치를 숭상하는 프랑스 사회가 부럽기도 했다. 게다가 영국 언론이 프랑스의 이 소식을 전하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게 문화장관의 일인데…”라며 비꼬고 있다는 대목에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농담으로라도, 우리 언론이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게 문화부 장관의 일’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지나친 반응이라고,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사회라는 게 놀랍다. 만약 똑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공무에 바쁜 문화부 장관에게 지나친 요구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니, 장관을 상대로 그런 질문을 하는 미디어가 아예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토크쇼나 정치 토론장에서 거짓말을 하는 상대방을 향해 던지는 “소설 쓰지 마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 나라에서 소설의 가치를 강조하기란 참으로 힘겹다. 게다가 쿨한 표정으로 “아직도 소설 같은 걸 읽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나라 아닌가.

소설은 사람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 세계다. 소설은 일상의 경험만이 아니라 탈일상의 경험까지 맛보게 하고, 한 생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과 상황과 대면시킨다. 그래서 좋은 소설 한 권은, 한 생애를 살아낸 것 같은 느낌과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다. 

강태형 시인
프랑스 사람들은 한 해에 14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9권 정도니까, 우리보다 1.5배의 독서량이다. 우리는 사는 일이 그들보다 힘겨워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책을 읽지 않으면 삶은 더욱 황폐해지고 힘겨워진다. 책 읽는 시간은 꿈꾸는 시간이고 생각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꿈꾸는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삭제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펠르랭 장관은 아마도 책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로 입양되어 장관에까지 오른 이가 열정적인 삶을 살지 않았을 리 없다. 입양은 결코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을 테니,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까. 성장기와 젊은 시절에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꿈꾸는 시간을 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장관직에 오른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주어진 직분에 매달리느라 책 읽을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닐까.

우리가 품어주지 못하고 입양 보낸 그녀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녀가 소설을 읽는 아늑한 저녁시간,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생을 살기를.

강태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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