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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선운(禪雲)…'구름 속 참선' 속세를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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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13 20:27:17 수정 : 2014-12-30 15: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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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산 듯한… 고창의 작은 집 두 채 ‘실제로 신선(神仙)이 있었다면 이런 곳에서 도를 닦지 않았을까.’

늦가을 정취를 찾아 내려간 전북 고창 땅에서 이 같은 생각이 절로 드는 작은 집 두 채를 만났다. 하나는 부처님을 모시는 절집이고, 하나는 조선의 유학자가 마음을 닦던 정자다. 그런데 어찌 저토록 바위와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들어서 있을까.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 부처님이 머물고, 유학자가 수양을 하는 자리라고 한다면 딱 맞을 법하다. 저곳이 바로 선계(仙界)가 아닐까.

고창 선운산 천마봉 정상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을 내려다본 모습. 오른편의 절집은 도솔암이고, 왼쪽에 자리한 흐릿한 건물이 도솔천 내원궁이다. 이 자리에 서면 비로소 ‘구름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선운(禪雲)’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고창의 명찰(名刹)인 선운사. 호남을 대표하는 단풍 명소 중 하나인 선운사는 선운산 들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선운산의 원래 이름은 도솔산이다. 산 아래로 흐르는 작은 물길이 도솔천, 그 주변이 도솔계곡이다. 선운사가 명성을 얻으며 도솔산도 이름이 바뀌었다. 

거대한 바위 틈새 절묘한 자리에 들어선 도솔천 내원궁.
이즈음 주변이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든 선운사의 풍광도 수려하지만, 선운산의 정취도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선운산의 진가를 알려면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에 들어야 한다. 선운사에서 도솔계곡을 따라 2㎞ 남짓한 숲길을 걸어 도솔암에 닿는다. 선운사에 딸린 4개의 산내 암자 중 하나인 도솔암의 불당 중 하나가 도솔천 내원궁이다. 도솔암에서 다시 커다란 바위 틈 사이로 놓인 돌계단을 올라야 도솔천 내원궁에 들게 된다. 도솔천 내원궁은 불가에서 미륵보살이 머무는 천상의 정토라고 여기는 곳이다. 도솔천 내원궁을 그대로 이 손바닥만 한 불당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옛 사람들은 이곳에 바로 부처님의 세상이라고 할 만큼 신묘한 기운이 감돈다고 여긴 게 아닐까.

선운산과 도솔천 내원궁의 진면목을 보려면 도솔암 건너편에 우뚝 솟은 천마봉에 올라야 한다. 도솔암에서 올려다보면 이 기세등등한 형상의 봉우리가 여간 높아 보이는 게 아니지만, 철계단을 통과해 천마봉에 오르는 데 30분이면 넉넉하다. 

천마봉에 오르면 기골장대한 바위틈 속에 아슬아슬 들어서 있는 도솔천 내원궁과 그 아래 도솔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장하고 거대한 바위와 작은 절집, 그리고 울긋불긋 단풍이 어우러지는 경관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선운’(禪雲)은 ‘구름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알듯 모를 듯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천마봉에 올라 도솔천 내원궁을 내려다보는 순간 이 산과 절집에 왜 ‘선운’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깨닫게 된다. 

 
정면에서 바라본 두락암과 두암초당.
선운사 입구에서 차를 몰고 가면 10분이나 걸릴까. 지근거리인 아산면 반암리의 아산초등학교 뒤편에는 두락암이라는 수직바위가 솟아 있다. 풍천이라고도 불리는 인천강을 끼고 있는 반암마을에는 병바위, 소반바위, 탕건바위 등 9개의 기암이 늘어서 있다. 그중 하나가 두락암인데, ‘두락’(斗洛)은 바위 형상이 곡식의 양을 재는 말(斗)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두락암이라는 수직바위의 움푹 파인 자리에 들인 두암초당.
이 바위 무릎쯤에는 옛 정자 하나가 매달려 있다. ‘두암초당’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이 정자는 바위의 움푹 파인 자리에 기둥을 놓고 처마를 들였다. 그래서 정자의 3분의 1은 바위 안에, 나머지 3분의 2는 다리를 받쳐 놓고 허공에 떠 있는 형상이다. 이 희한한 정자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호암 변성온, 인천 변성진 형제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호남의 석학인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와 교류한 호암은 빼어난 인품과 학식으로 널리 존경받던 선비였다. ‘두암(斗巖)’이라는 말도 곡식을 재는 말(斗) 같이 매사에 공평하고 반듯하다는 뜻으로, 정자 주인의 품성과 지향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정자에 올라 누마루에 걸터앉으면 인천강과 그 유역의 너른 땅이 거칠 것 없는 풍경을 풀어 놓는다.

도솔천 내원궁 바로 아래 자리한 도솔암 마애불.
도솔천 내원암이나 두암초당은 불자가 아닌 사람도 스스로 결가부좌를 틀고 마음수양을 하고픈 생각에 들게 하는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 막바지에 다다른 만추의 정취를 즐기러 고창 땅을 찾는 김에 이 절묘한 곳에 집을 들인 선인들의 뜻도 되새겨본다면 여정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다.

고창=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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