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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000년을 산 남자? 진실을 밝혀라!

입력 : 2014-11-13 21:49:37 수정 : 2014-11-13 21: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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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맨프럼어스’ 주변에 1만4000년간 늙지도 죽지도 않은 인간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서른다섯 살, 인생의 황금기다. 아직 젊지만 20대의 치기는 벗어버린 나이다. 영생불멸의 그를 보며 어떤 감정이 들까. 일단 반신반의하는 건 당연하다. 곧이어 흥미나 호기심이 솟아오른다. 클레오파트라는 미인이었는지, 예수는 실존했는지 반농담처럼 물어볼지 모른다. 단순한 흥미가 잦아들 즈음 진지하게 다가올 감정은 각자 됨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감정은 질투이거나 경이일 수 있다. 때로는 현실 부정으로 흐를 수도 있다.

연극 ‘맨프럼어스’(사진)는 ‘한 인간이 1만4000년간 산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작품은 지적 유희로 가득하다. 주인공 존 올드맨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10년간 역사학 교수로 일했다. 막 사직서를 내고 떠나려는 참이다. 심리학 교수 윌, 인류학 교수 댄, 미술사 교수 이디스, 생물학 교수 해리, 고고학 교수 린다와 조교, 학생이 송별 파티를 하기 위해 모였다. 교수들은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객석에 웃음이 흐른다.

밝게 시작한 연극은 존의 폭탄선언을 기점으로 서서히 진지해진다. 존은 자신이 ‘구석기 후기부터 1만4000년간 서른다섯 살로 살아온 불로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제 존과 교수들 사이에 지적 게임이 시작된다. 교수들은 존의 주장에 반발하거나 설득 당한다. 무대와 객석 역시 지적인 줄다리기를 벌인다. 존이 갖고 있는 물적 증거는 후기크로마뇽인이 쓰던 부싯돌, 고흐의 미발견 작품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존이 말하는 내용 대부분은 증거가 없다. 교과서에 이미 나온 얘기다. 존을 과대망상 환자로 볼지,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으로 믿을지는 전적으로 관객에게 달렸다.

이 작품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대신 다양한 층위의 생각 거리를 관객에게 던진다. 작품이 다소 산만해보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존 올드맨을 보며 순간의 소중함을 떠올릴 수 있다. 또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을 눈여겨볼 수 있다. 올드맨의 고독에 공감하거나 그의 주장을 논박하는 과정의 지적 재미에 즐거워할 수도 있다. 혹은 올드맨에게 설득당하기보다 작품의 논리 구조가 빈약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연출을 맡은 최용훈 연출가는 최근 가진 제작발표회에서 “무한히 사는 주인공은 지속적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반면 우리는 초월적이지 못하지만 자식과 친구들에게 영원히 기억된다”며 “연극에서 등장인물들이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에 재미를 느끼면서 삶을 반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관록의 배우들이 펼치는 탄탄한 연기와 능숙한 호흡은 이 작품의 최대 강점이다. 설익거나 삐걱대는 순간을 찾기 힘들다. 한 배역에 세 명의 배우들이 돌아가며 무대에 오른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정교하게 맞물린 지적 유희를 벌인다.

자신이 1만4000년간 살았다고 굳게 믿는 올드맨 역은 특히 연기하기 힘들다. 올드맨을 맡은 배우 문종원은 “1만4000년 동안 산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지려 집중하고 자기 암시를 하고 있다”며 “자기 확신이 없으면 드라마를 끌고 가기 힘들고 모든 표현이 거짓이 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리처드 셴크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스타트렉’ ‘환상특급’의 작가인 제롬 빅스비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다. 2007년 만들어졌으나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연극은 내년 2월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4만∼5만원.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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