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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벗어놓은 신처럼 강가에 놓여있는 배 두 척

입력 : 2014-11-20 20:04:01 수정 : 2014-11-20 21: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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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첫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저녁 강가에 배 두 척이 나란히 놓여 있다/ 저것은 망자가 벗어놓은 신이다/ 저 신을 신고 걸어가서/ 수심을 내비치지 않는 강의 수면을 두드린다/ 거기엔 사공도 없이 홀로 산으로 가는 배들을 모아서/ 깨끗이 닦아 내어주는 구두닦이가 계신가// (…) 또 한 번 배가 산으로 가나?/ 너의 낡은 구두가 빛난다/ 살아서는 신지 못할// 물속에 매달아 놓은 조등”(‘배가 산으로 간다’)

고요한 강가에 배 두 척이 나란히 놓여 있다. 강 너머 산등성이 무덤으로 가는 신발 같다고 시인은 본다. 사공도 없이 홀로 산으로 가는 배, 그 망자의 신발이 서러운가. 그래서 시인은 강물에 얼비치는 배 그림자를 두고 “살아서는 신지 못할/ 물속에 매달아 놓은 조등(弔燈)”이라고 쓰는가. 그윽하고 깊은 서정이 묵직한 슬픔에 얹혀 일렁이는 가작이다. 이제 등단 5년차인 민구(31·사진)의 첫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문학동네)에 실려 있다.

“춤추는 달, 불붙어서 몸서리치는 달, 차갑게 식은 잔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달,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달, 헐레벌떡 뛰어오는 어린 병사의 군화자국에 입맞추는 달, 아무도 없는 음악실 피아노 건반 위를 달리는 달, 어릴 적 코 묻은 손으로 주무르면 무엇이든 잘라서 만들 수 있는 멀리// 한 덩어리 달”(‘한 덩어리 달’)

이 시집에는 ‘달’과 ‘방(房)’ 연작이 유독 눈에 띈다. 시인에게는 “산꼭대기에 허물을 벗고 꽈리를 틀던 달”이 익숙하다. 성장기에 인천 산동네에서 살았는데 그 높은 지대에서 올려다보던 달은 따뜻하기보다는 차갑고 동물적이었다. 그 시절 가난과 ‘안 좋은 일들’ 탓이었을까. 시인은 “달이 먼저 나를 물기도 한다// 줄을 풀고 창문으로 넘어들어온 달이 구석에 나를 몰고 어금니를 드러낸다”(‘움직이는 달’)고 계속 쓴다.

시인이 ‘방’을 천착하게 된 것은 멀리 있는 소재들을 찾다가 가까이 있는, 방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자신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나는 몸이 하나이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셀 수 없이 많다”면서 “그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싶었고 화자보다는 관객이 되어 나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림 속의 사과 하나가/ 내 앞으로 불러왔다/ 잠시 뒤 바구니를 든 여인이 나타나/ 사과를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방바닥의 사과를 주워/ 송진 냄새가 진동하는 들판을 향해/ 천천히 내밀었다 그러자 사과는/ 손바닥에서 뛰는 심장처럼/ 은은하게 빛이 번져 어두운 방구석을 환하게 비추었다”(‘房-빛의 사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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