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혜성 탐사선 ‘로제타’가 던진 질문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4-11-20 20:52:18 수정 : 2014-11-20 21:40:2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경제·안보·국운 걸린 우주 개척 경쟁
아들딸 세대 위해 ‘미래창조’ 길 찾아야
영국 지식인 에드먼드 핼리는 1682년 혜성이 출현하자 옛 기록에 있는 궤도를 계산해 1758년에 또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24개 궤도를 계산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1531년과 1607년의 궤도였다. 핼리는 이것들이 1682년 혜성과 같은 것으로 봤다. 약 76년 주기로 밤하늘을 거듭 찾은 것으로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핼리 혜성의 발견이었다. 핼리는 그렇게 미신과 주술의 영역에서 관측과 과학의 영역으로 혜성의 자리를 옮겨 놓았다. 혜성은 더 이상 전쟁이나 재앙을 알리는 불길한 별일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도 밤하늘은 있었고, 밤눈 밝은 사람도 많았다. 당대 지식인은 뭘 했을까. 사직서 쓰기에 바빴다. 1531년 핼리 혜성이 나타났을 때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3정승이 물러나겠다며 중종 앞에 납작 엎드렸다. 핼리의 예측이 적중한 18세기 혜성 출현 때도 조정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조가 칭병한 까닭에 대리청정을 맡았던 사도세자에겐 수성(守城)으로 재앙을 늦춰야 한다는 상소가 쏟아졌다.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혜성 관련 기록이 이렇다.

인류 과학문명의 새 이정표가 지난주에 세워졌다. 지구로부터 5억1000만㎞ 떨어진 지름 4.4㎞의 혜성 67P에 유럽우주국(ESA)이 2004년 발사한 혜성 탐사선 ‘로제타’의 탐사 로봇 ‘필레’가 착륙한 것이다. 앞서 2001년 미국 탐사선 ‘니어 슈메이커’호의 소행성 ‘에로스’ 착륙 업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가다. 혜성이 관측의 영역을 넘어 밀착 탐구의 영역으로 성큼 이동한 것이다. 과학계 기대대로 태양계와 생명의 신비를 풀 단서가 눈앞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기에 현대 한국인은 뭘 하고 있는가. 감탄사만 연발한다. 로제타가 총알보다 50배 빠른 혜성 추적에 성공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뉴욕의 쥐불놀이 깡통에 서울에서 10원짜리 동전을 던져 넣는 격의 고난도 착륙도 완수했다니 얼마나 기특한가. 한결같다. 강 건너 불구경이다. 국회는 한 술 더 뜬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2020년 무인 달 탐사선 발사’ 계획 이행에 쓸 내년도 관련 예산 410억원을 놓고 ‘쪽지예산’이네 마네, 입씨름을 벌인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의 우주 개척 주도권 신경전은 아예 안중에 없다.

아무리 같은 땅덩어리의 소산이라 해도, 전근대와 현대의 반응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지금은 적어도 천체물리학의 상식은 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같은 면이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다. 철저히 국외자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필레가 착륙하든 말든, 67P 탐사 활동 57시간 만에 ‘겨울잠’에 들어갔든 말았든 우리는 구경이나 할 뿐이다. 이렇게 한가한 집단이 따로 없다. 

이승현 논설위원
ESA의 로제타 예산이나 기술이 우리로선 꿈도 못 꿀 수준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우주 투자가 가능하다. 적어도 경제력은 그렇게 커졌다. 하지만 로제타 뉴스는 그저 해외토픽감이다. 우주 개척은 경제의 문제, 안보의 문제, 국력·국운의 문제인데도 그렇다. 그래도 되는지, 현상 타개를 위해 어찌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문제의식이 형성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능력에 앞서 의지와 자세, 태도가 함량 부족이다.

밤하늘에 혜성이 떴을 때, 그것도 주기적으로 떴을 때 한반도의 선조가 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그러는 대신 기득권 체제가 무너지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그러면서 사직이나 청했다. 조선 사회가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망국의 수모였다. 혜성이 갈 길을 물을 때 한심한 진로를 택했던 탓이다. 밝은 미래 대신 캄캄한 미래로 돌진했다.

오늘의 한국은 어떤가. 긍정적 답변을 내놓기가 쉽지 않으니 걱정이다. 지구로부터 5억1000만㎞ 떨어진 혜성 67P에서 지난주에 둥실 떠오른 질문에 뚱딴지같이 답하면 다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로제타가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고. 우리 아들딸 세대의 운명이 걸린 묵직한 질문이다. 그간 틈만 나면 ‘미래창조’를 떠든 고관대작들부터 눈을 부릅뜨고 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