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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편지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도 없다. 오글거리는 사랑 고백부터 정치의 막후 거래까지. 유명인의 편지엔 세인의 시선을 붙잡는 내용이 그득하다. 역사의 빈칸을 메울 사료 또한 수두룩하다. 희소성은 상품가치를 높인다. 그래서 사후에는 웬만한 보석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사랑해! 트레이시, 내가 사랑한다고. 듣고 있어?’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그린 미국 만화가 찰스 슐츠의 연애편지 44통이 2012년 12월 35만달러에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됐다. 슐츠의 정부 트레이시 클라우디우스가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둘만의 비밀이 지켜질 것으로 믿고 슐츠는 편지를 보냈을 터이다. 그는 2000년에 고인이 됐다. 살아 있더라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이 경매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돈 앞에 한없이 무력한 사랑에 절망했을 듯싶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미국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연서들은 1999년 6월 경매에 부쳐졌지만 운명이 달랐다. 피터 노턴이라는 기업인은 편지들을 무려 15만6000달러에 구매했다. 편지 값도 엄청났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노턴이 편지들을 샐린저에게 되돌려줬다는 사실이었다. “은둔 생활을 하며 사생활을 보호받고자 했던 샐린저에게 주려고 일부러 사들였다.” 노턴의 말은 샐린저를 감동시켰다. 샐린저의 옛 연인이었던 조이스 메이너드는 “아이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편지를 팔았다”고 했다. 사랑의 증표가 그의 눈에는 한낱 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1529년 영국왕 헨리 8세의 캐서린 왕비가 클레멘스 7세 교황에게 이혼을 막아달라며 보낸 편지가 엊그제 6만8750유로에 낙찰됐다고 한다. 캐서린 왕비는 편지에서 “나는 완전히 무고하며 까닭없이 버려졌다”며 남편의 혼인무효 시도를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은 너무 멀리 가 있었다. 헨리 8세는 끝내 이혼을 관철하고 교황청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성공회를 세웠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편지 내용이 공개되고 거래되는 것에 박수를 칠 이가 얼마나 될까. 편지 경매로 대박을 터트렸다고, 수익성 좋은 편지를 낙찰받았다고 환호성만 지를 계제가 아니다. 편지를 쓴 이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부터 가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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