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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개 학교 급식 중단…어른 파업에 볼모된 학생

입력 : 2014-11-20 19:18:02 수정 : 2014-11-21 07: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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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21일까지 일부 파업 “제가 직접 쌌어요. 엄마는 매일 새벽 5시에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셔서 오늘 급식 안 한다는 얘기를 못했거든요.”

20일 낮 12시10분 서울 성북구 장위초등학교의 4학년 교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 가는 대신 제자리에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냈다. 

급식 대신 도시락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학교급식에 차질이 발생한 20일 오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진모(9)양은 밥과 깻잎, 참치만 든 김밥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진양이 혼자 싼 김밥은 군데군데 터져 있었다. 진양은 “김밥을 싸느라 오전 6시에 일어났고,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은 컵라면을 사서 학교에 갔다”며 “이렇게 계속 급식을 안 하면 정말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요구하며 이날부터 이틀간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충남 124곳, 전북 121곳, 경북 111곳, 서울 84곳 등 전국적으로 900여곳의 학교에서 급식이 중단됐다.

410곳은 단축 수업을 했고, 50여곳은 빵 등의 대체급식을 준비했지만 320여곳은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은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이날 급식이 중단된 학교에는 부실한 음식을 싸온 학생들이 많았다. 메뉴는 대부분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김밥이나 주먹밥, 볶음밥 등이었다. 미처 도시락통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아이스크림통에 볶음밥을 싸온 학생도 있었고, 점심시간 때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전해주고 가는 부모도 있었다.

장위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는 21명의 학생 중 8명이 컵라면을 사왔다. 담임 교사는 커피 포트에 물을 끓여 아이들에게 일일이 부어주었다. 다른 반에도 컵라면을 사온 학생들이 많아 복도에는 라면 냄새가 진동했다.

식판 대신 팻말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20일 서울역광장에서 총파업투쟁 대회를 열고, 정부의 방학 중 생계보장 대책 마련과 근속수당 상한제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구로구 개봉초등학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6학년 신모(12)군은 “엄마가 노래방을 운영해서 새벽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일부러 급식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컵라면을 사왔다”며 “내일은 점심으로 피자를 싸올 것”이라고 말했다.

6학년 홍모(12)군은 “엄마가 미용실에서 일하는데 아침 일찍 나가셔서 아침에 동생 것까지 도시락 2개를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군의 어머니 박모(45)씨는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도시락 준비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내일도 급식이 없다고 해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 가운데 10명은 점심을 준비하지 못해 학교 측에서 준비한 빵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정모(38·여)씨는 “학교에서 빵과 우유를 준다고 했지만 그걸로는 부실할 것 같아 주먹밥과 국을 챙겨보냈다”며 “보온 도시락통이 없어서 어제 급히 사러 갔는데 동네 마트가 품절이어서 멀리 가서 사왔다”고 말했다.

전남 지역은 이날 학교비정규직 근로자 7599명 중 14.3%인 1093명이 파업에 참여, 145개교에서 급식이 중단됐으나 21일에는 파업을 철회하기로 했다. 32개교에서 급식이 중단됐던 세종시에서도 파업 철회가 결정됐다.

김유나·김건호·이지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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