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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박정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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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24 21:14:30 수정 : 2014-11-24 21: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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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가 그토록 슬픈 노래인 줄 미처 몰랐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노래가 시작되자 한두 방울 맺혔던 눈물은 어느새 폭포수가 되었다. 광부도 울었고 대통령도 울었다. 강당 안은 금세 울음바다로 변했다. 1964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함보른 탄광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강당에는 작업복을 입은 한국인 광부와 한복 차림의 간호사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광부들의 얼굴과 옷에는 시커먼 석탄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스무살 남짓한 간호사들은 가난한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이방인의 시체를 닦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들 앞에서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합시다!”라고 외쳤다. 눈물로 목이 잠긴 대통령은 이 말만 되풀이했다.

어린 간호사들은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가 “어머니! 어머니!” 하고 울었다. 옷깃이 찢어질 정도로 여사의 옷을 붙잡고 매달렸다. 여사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한 명 한 명 껴안았다. 광부들은 서독 대통령 앞에 큰절을 올리며 간청했다. “제발, 한국을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은 ‘눈물의 외교’였다.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에게 “돈을 좀 꿔달라”고 몇 번이나 사정했다. “각하! 우리를 믿어주세요. 군인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하고 읍소했다. 하도 눈물을 흘리자 서독 총리가 “니히트 바이넨(그만 우세요)”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가난한 동방의 나라에 선뜻 거금을 빌려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월급을 담보로 잡히고서야 겨우 1억4000만마르크를 빌릴 수 있었다. 이 돈으로 한국은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에 심었다.

꼭 반세기가 걸렸다. 내달 10일 눈물의 그날에 함보른 탄광에서 조촐한 기념식이 열린다. 행사에는 당시 파독 광부·간호사와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참석한다. 역사의 현장임을 알리는 표지문도 세워진다고 한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말만은 가슴에 새기자.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그를 판단하지 마라.’ 인디언 부족의 격언이다. 아직 많은 사람이 박정희의 신발이라면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우리가 과연 그때의 눈물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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