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기홍칼럼] 사람 몰라보는 인치(人癡)

관련이슈 김기홍 칼럼

입력 : 2014-11-24 21:15:51 수정 : 2014-11-24 21:36:5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인사대탕평 약속위반 인사가 망사로
공정한 인사혁신은 구호보다 실천
바닷바람을 맞으러 서해안 제부도에 간다. 초행길이 아닌데도 내비게이션을 연신 힐끔거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제부도 가는 길을 훨씬 지난 것 같은데 내비는 계속 직진 표시만 가리키고 있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내비를 들여다보니 아뿔싸, ‘제부도’가 아닌 ‘제주도’로 찍혀 있다. 내비게이션이 사람들을 길치로 만들고 있다. 아는 길도 으레 내비에 의지해 간다. 주소 하나만 갖고도 잘도 찾아다녔던 빠꿈이들이 내비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길치들이 가장 당황하는 때는 내비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는 음성메시지가 나오는 순간이다. 길치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택시기사들이다.

길치 음치 몸치 박치 기계치 등은 혼자 불편을 감수하면 그만이다. 기계나 자기 몸을 뜻대로 쓸 줄 모른다 해서 세상에 딱히 피해를 주는 것은 없다. 사람을 몰라보는 인치(人癡)는 다르다. 인치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 인재를 널리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논공행상을 자리로 하고 자기 사람만 챙긴다. 신상필벌이 분명하지 않다. 적재적소의 인재 등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직이 상하고 사람이 다친다. 이걸 본 세상의 능력자들은 나서는 대신 초야에 묻혀 때를 기다린다. 인치가 횡행하면 인사가 망사(亡事)가 된다.

박근혜정부는 보기 드문 인치다.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및 장관의 인사권 보장, 공직임용의 기회 균등과 공평한 대우 촉진, 덕망과 능력이 있으면 여야를 떠나 발탁하는 대탕평인사 추진, 낙하산 인사·회전문 인사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사권 분권화 추진 등을 금과옥조처럼 귀중히 여기겠다더니 헌신짝 취급을 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의전서열 10위 가운데 8명이, 감사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에 이어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5대 사정기관의 수장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장관들의 인사권이 청와대만 가면 정체·지체가 반복되기 일쑤고 낙하산 인사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인사혁신처가 출범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담화문을 통해 “관피아의 폐해를 끊고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사회로 혁신하겠다”고 밝힌 지 6개월 만이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사회로의 혁신’을 강조한다. 부처 이름에 ‘혁신’을 새겨놓은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억지 춘향식으로 이름을 갖다 붙인 어색함이 없지 않다. 그렇다해도 인사에 관한 한 전병인 이 정부가 말 그대로 인사에서 혁신을 이룬다면 ‘인사 대혁명’이란 평가가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끼리끼리 서로 봐주고, 눈감아주는 민관 유착의 고질적 병폐, 관피아를 도려내고 발라내는 일도 어려울 것이 없겠다.

사람을 쓰고 내치는 일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탈바꿈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눈물을 떨구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드러낸 뒤에도 대통령의 인사권이 비웃음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낙하산·회전문·돌려막기 인사가 멈추지 않았다. 아랫사람이 윗사람 흉내 내 제 사람을 앉히는 ‘콩가루 인사’까지 등장했다. 민영화된 기술신용평가기관의 상임감사 자리를 최경환 부총리의 매제이자 보좌관이었던 사람이 꿰찼다. 입 달린 사람들이 앞다퉈 한마디씩 거든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척하면서 대통령의 결의마저 허투루 여기는 풍토가 만연하다.

인사혁신처는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표방한다. 듣기는 좋은데 미덥지 않다. 세상 인심이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는다. 앞에서는 혁신, 뒤에서는 구태를 답습하는 세태에 익숙해져 있다. 구호보다 실천이다. 제부도로 간다면서 인사의 내비게이션에 제주도로 잘못 찍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 성취만을 위해서, 일만 바라보고 부지런히 올라갈 때에는 주위에 수없이 많은 꽃 같은 사람들이 보이질 않다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난 이후에 내려갈 때에야 사람들이 보이지만, 이미 다 멀어지고 떠나고 없다고 깨우쳐 주는 시인 고은의 ‘그 꽃’ 정독을 인사 혁신에 앞장선 이들에게 권한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블랙핑크 로제 '여신의 볼하트'
  • 루셈블 현진 '강렬한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