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옛것이 예술이 된 곳…유산 보호 의무 헌법에 명시

입력 : 2014-11-25 18:57:01 수정 : 2014-11-25 22:27:1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탈리아 고도(古都)에서 배운다] 문화유산과의 공존이 생활이 되다
'
고대 로마제국은 세계를 제패했고, 중세 르네상스는 인류 역사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이탈리아에는 당시를 증언하는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로마, 아시시,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이런 문화유산이 어떻게 보존, 활용되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전한다. 이탈리아의 문화유산 정책이 한국의 그것에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지도 짚어본다.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3일부터 13일까지 진행한 이탈리아 현지 연수를 통해 이뤄졌다.

피렌체 파엔차 거리에 있는 라 콘테시나 호텔의 모습. 1900년대 초반 르네상스풍으로 지어진 건물로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을 호텔로 바꿔 사용 중이다.
호텔 라 콘테시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도심 파엔차 거리에 있다. 이 호텔은 방마다 구조가 제각각이다. 침실과 화장실, 식탁 등의 위치는 물론 방의 모양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투숙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 전략 같은 게 아니다. 1900년대 초반 르네상스풍으로 지어진 호텔 건물이 역사지구 안에 있어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는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다. 변경작업은 건물 색깔까지 역사적 맥락을 따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 시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로마 콜로세움 인근 도로 한편에 있는 지하철 공사 현장. 이탈리아인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10년째 ‘공사 중’이다. 안전 시공을 위해 엄청 신중하게 공사를 하나 싶기도 할 테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파내면 고대 유적이 나오는 통에 공사가 진척될 수가 없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 로마의 콜로세움 인근 지하철 공사현장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지하철 공사는 고대 유적의 잦은 발굴로 10년째 진행 중이라고 한다.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문화재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주민이 많고, 그런 주민들을 설득하고 다독이는 데 서툴며 심지어 무관심하기조차 한 정부를 가진 한국의 현실이 떠올라 “불편하지 않으냐”, “민원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라 콘테시나의 주인 아데린도 펠라고티씨는 질문이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지만 대답은 사뭇 비장했다. “조상이 물려준 이 건물은 나와 가족들을 살리는 생명과도 같다.” 로마의 가이드는 “문화유산은 오랜 시기에 걸쳐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도 사용하는 게 많다.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활,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곳들이 시 외곽에 있거나, 소규모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하철 공사현장은 로마의 중심지에 있다. 피렌체 역사지구는 도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그 안에 주택, 시장, 관공서, 미술관, 각종 가게가 있다. 이 때문에 문화재로 인한 재산권 행사, 개발 제한 등이 일반적이지만 주민의 동의 아래 별 무리 없이 보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피렌체의 한 건물에서 지붕 공사가 한창이다. 역사지구 안의 건물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 후 허가를 받아야 이런 공사가 가능하다.
아시시나 베네치아도 다르지 않다. 고대,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탈리아의 중심인 이 도시들은 수천년, 수백년 전의 문화재를 보호하며 ‘고도’(古都)로서 위엄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에서 건축가로 활동 중인 변준희씨는 “건축물의 경우 외관 변경에 특히 엄격하다. 상점에서 입간판 하나 내놓는 것도 허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각종 제약에 대한) 체념일 수도 있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문화재는 생활의 일부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워낙에 많은 문화재가 전해지고 있어 문화재의 가치에 일찍부터 주목하고, 보존을 위한 교육과 제도 정비를 해온 것이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했다. 이탈리아에는 19세기에 이미 문화재 보존 관련 법률이 있었다. 1860년 통일이 된 뒤에는 오랜 토론을 거쳤고, 1900년대 초반부터 정비를 본격화했다.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제약하는 법률을 제정한 것이 1909년이다. 1922년에는 자연경관을 보호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이 법률에 따르면 유명한 그림에 묘사된 농촌 풍경도 보호 대상이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종탑에서 본 피렌체의 모습. 수백년 세월 동안 조성된 피렌체 역사지구의 건물과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구조와 외관, 색깔 등을 바꾸는 데 엄격한 제한이 따른다.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 의무를 명시한 것은 인상적이다. 헌법 9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에 문화재 관련 연구, 기술의 발전과 문화유산 보호의 의무를 지우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디렉터 지노 파밀리에티씨는 “법률상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조항이고, 경제 관련 법안보다 상위에 있는 조항”이라고 소개했다.

문화재와 관련한 제도 정비와 교육 강화가 주민들의 동의를 전제로 한 보존정책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이 로마와 피렌체 등이 고도로서의 정체성과 외형을 유지하는 토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 스테파노 데 카로 사무국장은 “기술 발전만으로는 문화재 보존이 제대로 될 수 없다”며 “문화재 보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의 참여와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로마·피렌체·아시시·베네치아=글·사진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