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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돈키호테… 400년 전 통찰 새롭다

입력 : 2014-11-27 20:05:56 수정 : 2014-11-27 21: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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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안영옥 교수 스페인어 본 전 2권 번역 출간 “누구든 나를 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인생 별것 있소?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지. 그러니 우리 모두 살면서 서로 평화롭고 의좋게 먹읍시다. 나는 정의를 포기하지 않고 뇌물도 받지 않으며 이 섬을 다스릴 것이오. 그러니 모두가 눈 똑바로 뜨고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기 바라오. 이곳에는 혼란이 있지만, 내게 기회만 준다면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임을 알게 해주고 싶소.”

돈키호테의 종자(從者) ‘산초 판사’의 말. 400년 전 나온 소설 속 대사치고는 시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판사(Panza)란 스페인어로 ‘배불뚝이’라는 의미이니 우리네 점잖고 권위 높은 판사(判事)와 혼돈하지 말기 바란다. 커다란 배와 작달막한 키와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착하지만 머리는 약간 모자라는 이웃 농부가 돈키호테의 간청에 응낙해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종자가 되었다. 돈키호테는 산초가 자신을 따라나선다면 그 보답으로 모험의 결실로 얻게 될지 모를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쾌락을 위한 조롱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어느 공작의 전략에 말려 산초는 통치할 섬을 받게 되는데, 그는 뜻밖에도 훌륭하게 통치를 수행한다.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산초가 어찌 그리 통치자로 제대로 섰는지, 그를 우롱하고자 한 주변 인물들은 나중에 산초의 진정성에 놀라기까지 한다. 산초는 열흘간의 통치 끝에 스스로 퇴진을 작심하고 자신의 가장 친한 동지인 당나귀 ‘잿빛’에게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속삭인다.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돈키호테’ 삽화들. 17세기 초반 출간된 ‘돈키호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로 재생되고 있다.
“너와 마음을 나누고 마구를 손질하고 네 작은 몸통이나 먹여 살릴 일 이외에는 다른 생각일랑 하지 않으면서 보낸 나의 시간들과 나의 나날들과 나의 해들은 행복했었지. 하지만 너를 내버려두고 야망과 오만의 탑 위에 오르고 난 이후부터는 내 속으로 수천 가지 비참함과 수천 가지 노고와 수천 가지 불안이 들어오더구나.”

산초가 섬을 떠날 때 그를 조롱하기 위해 통치자의 무대에 올렸던 사람들은 울었다. 그들이 “그토록 단호하고 신중한 결심과 말에 진심으로 감동”하며 산초를 껴안자 그 또한 울면서 모두를 얼싸안았다.

작가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동시대의 뛰어난 문인으로 돌에 새겨진 세르반테스. 그는 1605년 ‘라만차의 이달고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펴낸 뒤 가짜 속편이 나도는 가운데 1615년 속편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썼다. 전쟁과 부상과 포로의 삶을 지나며 흥행작을 썼지만 ‘매절’로 출판업자에 넘기는 바람에 빈곤에 시달리다 2권을 낸 다음해 작고했다. 성서 다음으로 훌륭한 ‘인류의 바이블’이라는 찬사를 받아온 그의 작품은 출간 400년이 지나는 데도 국내에는 스페인어를 제대로 번역해 나온 책이 드물었다. 이번에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가 5년에 걸쳐 스페인 현지 무대를 일일이 답사하며 ‘열린책들’에서 펴낸 ‘돈키호테’ 전 2권은 한글판 돈키호테를 비로소 제대로 살려낸 공로가 크다.

안 교수는 돈키호테에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종자 산초를 ‘키호테화’시킨 것이야말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한다. 돈키호테를 ‘광인’으로 상정하지 않았다면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을 거쳐 화형이라는 중형을 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설 말미 그의 묘비명에 세르반테스는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고 적었다. 안 교수는 “이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 심오하게 상징하는 대목이라고 언급한다.

국내에 돈키호테 번역본은 많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축약본이거나 스페인어를 직접 번역하지 않은 중역이 태반이다. 드물게 나온 스페인어 번역본도 잘못된 표현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종교재판과 혹독한 왕정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해학적 장치 때문에 단어 하나만 잘못 번역해도 작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독자들에게 이 텍스트의 이면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해설서도 따로 펴낼 작정이다. 그는 “훌륭하게 통치하고도 자신을 돌아보며 흐느끼는 산초야말로 돈키호테 자신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졌어도 제대로 심어놓은 희망”이라며 “죽음으로도 죽일 수 없는” 돈키호테를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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