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종자(從者) ‘산초 판사’의 말. 400년 전 나온 소설 속 대사치고는 시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판사(Panza)란 스페인어로 ‘배불뚝이’라는 의미이니 우리네 점잖고 권위 높은 판사(判事)와 혼돈하지 말기 바란다. 커다란 배와 작달막한 키와 긴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착하지만 머리는 약간 모자라는 이웃 농부가 돈키호테의 간청에 응낙해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종자가 되었다. 돈키호테는 산초가 자신을 따라나선다면 그 보답으로 모험의 결실로 얻게 될지 모를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쾌락을 위한 조롱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어느 공작의 전략에 말려 산초는 통치할 섬을 받게 되는데, 그는 뜻밖에도 훌륭하게 통치를 수행한다.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산초가 어찌 그리 통치자로 제대로 섰는지, 그를 우롱하고자 한 주변 인물들은 나중에 산초의 진정성에 놀라기까지 한다. 산초는 열흘간의 통치 끝에 스스로 퇴진을 작심하고 자신의 가장 친한 동지인 당나귀 ‘잿빛’에게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속삭인다.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돈키호테’ 삽화들. 17세기 초반 출간된 ‘돈키호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로 재생되고 있다. |
산초가 섬을 떠날 때 그를 조롱하기 위해 통치자의 무대에 올렸던 사람들은 울었다. 그들이 “그토록 단호하고 신중한 결심과 말에 진심으로 감동”하며 산초를 껴안자 그 또한 울면서 모두를 얼싸안았다.
작가 세르반테스 |
안 교수는 돈키호테에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종자 산초를 ‘키호테화’시킨 것이야말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한다. 돈키호테를 ‘광인’으로 상정하지 않았다면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을 거쳐 화형이라는 중형을 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설 말미 그의 묘비명에 세르반테스는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고 적었다. 안 교수는 “이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 심오하게 상징하는 대목이라고 언급한다.
국내에 돈키호테 번역본은 많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축약본이거나 스페인어를 직접 번역하지 않은 중역이 태반이다. 드물게 나온 스페인어 번역본도 잘못된 표현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종교재판과 혹독한 왕정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해학적 장치 때문에 단어 하나만 잘못 번역해도 작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독자들에게 이 텍스트의 이면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해설서도 따로 펴낼 작정이다. 그는 “훌륭하게 통치하고도 자신을 돌아보며 흐느끼는 산초야말로 돈키호테 자신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졌어도 제대로 심어놓은 희망”이라며 “죽음으로도 죽일 수 없는” 돈키호테를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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