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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일하는 당신, ‘잠’을 빼앗겼다

입력 : 2014-11-28 20:09:32 수정 : 2014-11-28 2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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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크레리 지음/김성호 옮김/문학동네/1만3800원
24/7 잠의 종말/조너선 크레리 지음/김성호 옮김/문학동네/1만3800원


신간 ‘24/7 잠의 종말’은 제목 그대로 ‘24/7 체제’, 즉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현대 산업·소비시대가 ‘잠의 종말’을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죽도록 일하면서 잠을 빼앗길 자유와 일하지 않고 굶어죽을 자유,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 갇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현재 북미 대륙의 성인은 평균 하룻밤에 대략 6시간 반을 자는데, 한 세대 전에는 8시간, 더 이전인 20세기 초에는 10시간을 잤다. 17세기 중엽부터 잠은 가치절하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 흄, 로크 등 많은 철학자들은 잠이 정신 활동이나 지식 추구와 무관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면 잠은 저차원적인 원시로의 퇴행으로 내몰리기까지 했다.

지금은 아예 잠을 추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밤낮으로 활동할 수 있는 흰정수리북미멧새를 연구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불면병사’가 탄생하면 그 불면기술이 군사부문에서 민간영역으로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대로 불문가지다. 조너선 크레리 미국 컬럼비아대학 예술사·고고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이같이 우려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보고,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 이런 상황에서 잠과 휴식은 불필요한 것이 됐을 뿐 아니라 체제의 안정과 영속을 좀먹는 이단으로 치부된다. 저자는 이같이 잠을 통해 정보통신기술이 선도하는 테크노자본주의 시대의 살풍경과 그 안에서 더욱 심화되는 인간소외를 꼬집는다.

24/7 체제에서 잠은 왜곡되고 변질된다. 더 이상 과거처럼 필연적이거나 자연적인 관념의 잠이 아니다. 그저 생리적 필요에 의해 가변적으로 ‘관리’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 현대인들은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 모바일 기기를 손에 쥐고 메시지와 정보를 확인한다. 수면 모드에 들어갔던 모바일 기기처럼 인간도 완전한 수면이 아니라 ‘절전 대기 상태’에 있다가 다시 정보통신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후기자본주의 시대 인간의 소외를 잠을 통해 들여다보는 시도가 더없이 신선하며, 예술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잠에 대한 여러 예술작품을 이곳저곳에 배치해 놓은 점도 흥미롭다.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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