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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거장들 작업실 그리며 그들의 예술혼과 소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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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1 19:57:36 수정 : 2014-12-01 19: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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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대가들의 작업실 소재 개인전 여는 남경민 작가 마지막 남은 잎새들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그 위로 겨울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뿌려졌다. 작가는 궁궐 돌담을 따라 거닐었다. 물에 젖은 색색의 낙엽들은 땅에 납작 엎드려, 길에 양탄자를 깔았다. 검붉은색부터 노란색까지 색의 조합을 고려해 누군가가 뿌려 놓은 듯하다.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설치미술이라 했다. 낭만이 떨어진 풍경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하지 않았던가. 사춘기 소녀마냥 작가는 담벼락에 기대어 깔깔거리기도 하고 깡총깡총 지난여름의 잔해들 위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서양 대가들의 작업실에 이어 조선시대 대가들의 작업실 소재 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남경민(45) 작가와 지난 금요일 오후 창덕궁에서 만났다.

작품 ‘규장각 안에서 부용정을 바라보다’ 앞에 선 남경민 작가.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대가들의 아우라가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게 해주는 마법”이라고 말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부용지와 부용정이 있는 창덕궁 후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높은 곳에 마주하고 있는 2층 누각 주합루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1층은 서고인 규장각으로 1776년 정조 때 만들어졌다. 정조가 아꼈던 단원 김홍도가 분명 이곳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단원이 되어 부용정을 바라본 곳이다. 시간을 초월한 만남인 셈이다.

그에게 작가의 작업 공간은 특별한 것이다. 한 작가의 예술세계와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되고 있다.

“어느날 제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작업실 자체가 ‘저’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고,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있으니 그야말로 저의 정체성의 코드였지요.” 그는 이후 고흐,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의 작업실을 그려 나갔다.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예술혼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대가들과의 시공을 넘나든 소통이지요. 저의 예술혼을 깨우는 계기도 됐어요. 사실 저의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그들과도 연계돼 있습니다. 저의 미래도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고요. 그래서 당대에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돼 있다고 하지요.”

과거의 거장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편으론 현재라는 통로로 나와야 하는 그의 작업은 어쩌면 마법 같은 일이다.

“예술의 미덕은 바로 환타지에 있지요.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해주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나요.” 그의 이런 기질은 미모가 뛰어났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저의 외가는 김포 대부호였어요. 외할아버지는 일본 와세대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분이셨지만 시대적 분위기가 보수적이라 어머니의 꿈을 완전히 무시하셨습니다. 주위에서 배우를 하라고 했지만 언감생심이었고 한 남자의 아내로 만족해야 했지요.” 그가 화가가 될 것이라고 했을 때 가장 지지를 해준 것도 어머니였다.

“한 남자의 사랑에 조바심을 태우지 말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예술가가 되라고 하셨지요. 부모로선 참으로 하기 어려운 말씀이셨을 거예요.”

김홍도를 아꼈던 정조의 개혁 정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인 규장각과 규장각에서 바라본 부용정의 무대에 선 남경민 작가.
빗방울이 굵어져 창덕궁 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저 세상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말문을 한동안 잇지 못했다. 그의 눈가엔 이미 이슬이 맺혀 있었다.

“유럽여행을 두 달 정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스노우 볼을 여러 개 샀어요. 흔들면 상했던 기분도 가라앉고 스트레스도 해소되지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달랑 두 개만 남았을 때 어머니가 달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엄마에게 이게 왜 필요해?’라고 타박하며 안 드렸어요.”

그는 어머니도 꿈 많았던 여인이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가 너무 그림에만 죽기 살기로 덤빈다고 하지요. 어머니의 꿈도 제가 대신해야 하니 두 사람의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게으름은 피울수가 없어요.” 그가 커피숍 화장실에서 오래도록 나오지 못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19일까지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사비나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시장 그림 속 거울에서 금방이라도 신윤복 미인도 여인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신윤복의 방을 그린 작품이다.

살그머니 빨간색 커튼을 들춰서 엿본 보라색 카펫이 깔린 또 다른 그림 속 방에는 본래 한 폭인 김홍도의 ‘군선도’가 세 폭으로 나뉘어 거울과 병풍, 이젤 위에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방 곳곳에는 비파와 생황, 거문고 등의 악기가 놓였다. 붓과 주전자 등은 마치 방금까지 누군가 그림을 그리다 잠시 자리를 비운 듯하다. 방의 주인은 바로 김홍도다. 작가는 김홍도의 그림과 김홍도가 즐겨 연주했던 악기들, 스승 강세황의 책 등을 그려넣어 김홍도의 화방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방에는 한쪽 날개와 해골 등 보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한 오브제도 있다. 한쪽 날개는 예술가로서의 꿈을, 해골은 죽음을 통한 삶의 성찰 도구를 각각 의미한다. 방의 본래 주인과의 교류를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가들에게 초청받아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과 만나고 내면을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그는 대가들 관련 작업실 자료가 많지 않아 그만큼 더 발품을 팔아야 했다. 상상력을 담아 그리더라도 그만큼 많이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공부하는 화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 그림에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고 있어요.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선대 대가들의 화방 풍경은 나만의 상상 속에서 오히려 더욱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는 겸재 정선이 은둔한 거처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과 그 풍경을 담은 정선의 그림, 그리고 그 풍경을 그가 현대적으로 재현한 그림 등을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한 화면에 배치했다. 창문 밖, 거울 속, 책상 위, 혹은 이젤 위 등에서 같은 듯 다르게 그려진 그림을 찾아 비교해 보는 것도 묘미다.

“예전에는 영혼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대가들의 영혼이 그림에 남아 있어 내가 그들의 방을 그리고 또 연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대가들의 작업실 풍경을 그리면서 나름 그들의 개성도 알게 됐다. 글과 음악도 즐긴 김홍도는 다소 호방한 성격에 한량 기질이 있었고, 자연을 벗 삼아 은둔을 즐긴 정선은 지적인 인물이었다. 신윤복은 자유분방하고 세련된 성품을 지녔다.

“신윤복이 그린 여인의 옷 매무새나 자태를 보면 도저히 여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터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남장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지요. 아마도 그는 여인의 속성을 지닌 게이였을 겁니다.”

그는 대가들의 아우라가 미래로 나아가게 해주는 ‘마법’이라고 했다. 짧지만 갈 길 잃은 현대미술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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