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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성공·사랑… 우리가 진정 가질 것은

입력 : 2014-12-11 21:35:25 수정 : 2014-12-11 21: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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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위대한 유산’
부모를 잃고 누나에게 얹혀 사는 가난한 시골 소년 핍은 외친다. “나는 신사가 될 거야.” 부자 소녀 에스텔라를 좋아하게 된 뒤 핍은 열등감을 맛본다. 내면에서 중산층 신사를 향한 갈망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한없이 암울하다. 핍은 대장장이 매부의 집에 사는 “가난한 돼지 새끼, 공짜로 먹고 자는 노비” 신세다. 근사한 신사가 될 길도 없거니와 핍이 모르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신사란 무엇일까. 연극 ‘위대한 유산’은 작은 힌트를 준다. “왁스칠을 아무리 해도 나뭇결을 가릴 수 없단다. 칠하면 칠할수록 나뭇결이 드러나지.” 그러나 핍이 왁스칠이 아닌 나뭇결을 가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 ‘위대한 유산’(사진)은 연말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편하게 보기 좋고 따뜻하지만, 생각의 가지들을 건드린다. 지나온 한 해와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극을 보며 근본적이고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고전의 힘이다.

‘위대한 유산’은 디킨스의 후기작으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이 가장 부강하던 시절 신분 상승의 욕망과 물질주의, 그 그늘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을 조명한다. 하층계급을 벗어날 길 없던 핍은 뜻밖의 행운을 얻는다. 변호사 재거스를 통해 얼굴 모르는 후원자가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겠다고 전해온다. 상속의 조건은 런던에서 신사 교육을 받는 것이다. 에스텔라에게 한 걸음 다가가게 된 핍은 겉은 점점 말쑥해지지만 속은 텅 비어간다. 가난한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허영과 속물성에 물든다.

각색을 맡은 김은성은 방대한 원작을 정리하면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신사가 되려 하는 핍의 성공 드라마’로 가닥을 잡았다. 일부 인물을 생략하고 후반부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인연들을 가지치기했다. 이 때문에 핍의 숨겨진 후원자인 범죄자 맥위치의 비중은 다소 축소됐다. 연극 속 영국 사회의 욕망은 현재의 한국과 겹친다. 신사를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속물성이 낯설지 않다. “신사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소유할 뿐”이라는 극 중 대사는 초등학생조차 ‘빌딩 부자’를 부러워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빼다박았다. 연극은 이런 닮은꼴을 무대로 옮긴다. 핍이 신사 교육을 받는 동안 화려한 클럽과 춤을 등장시킨다. 오락적 볼거리는 120분에 달하는 상연 시간에 숨통을 틔워준다. 동시에 ‘신사’에 대한 비틀린 가치관도 대변한다. 다만 핍이 범죄자의 재산을 상속받을지 갈등하는 장면에서 여성 댄서들이 몰려들고 곧이어 핍이 “가버리란 말야”라고 외치는 모습은 1990년대 드라마 연출처럼 통속적이다.

무대는 여러 공간으로 분할됐다. 미스 헤비셤과 에스텔라가 사는 저택 새티스하우스가 위쪽에 고정돼 있다. 아래쪽은 대장간, 런던 집, 파티장 등으로 수시로 바뀐다. 이런 무대를 활용해 영화적 장면 전환을 차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인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순간 몇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있는 식이다.

핍의 소년 시절이 펼쳐지는 동안 무대 한편에서는 성인이 된 핍이 지켜보고 있다. 성인 시절에는 반대로 소년 핍이 그를 바라본다.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는 인생에 대한 거리두기와 통찰을 제공한다. 연출을 맡은 최용훈은 “어둡고 진지한 원작에 한국적 정서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연극의 마지막은 인간에 대한 희망과 따뜻함으로 매듭 짓는다.

핍 역할은 김석훈, 헤비셤은 길해연, 맥위치는 오광록·양영조, 재거스 변호사는 조희봉, 에스텔라는 문수아가 연기한다. 2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2만∼5만원. 1644-2003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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