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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틀을 깨는 다양한 시도가 미술의 새 시대 열것”

입력 : 2014-12-15 20:58:54 수정 : 2014-12-16 15: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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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실격된 작가들의 합격’展 여는 정윤영 작가 올 한 해도 수많은 작가들의 전시가 있었다. 매일 쏟아지는 전시 소식에 메일함은 늘상 용량 초과였다. 그중에는 간혹 절절한 사연이 담기기도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작가의 길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할 땐 가슴이 먹먹했다. 지난주엔 색다른 메일 하나가 들어왔다. 전시 제목이 ‘작가 실격’이다. 작가 6명이 스스로 힘을 모아 마련한 전시다. 스스로를 ‘실격된 작가’라고 선언한 ‘당돌함’이 놀라웠다. 제도권 미술과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역설이 담겼다. 그 중심엔 작가로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윤영(27·동국대 졸)씨가 있다.

“작가들은 대부분 외롭게 작업을 해요. 특히 젊은 작가들은 고달픈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지요. 외로움은 그래도 견딜 만해요. 주변 친구들은 대학 졸업 후 스펙 쌓기에 열중하며 사회로 진출하기 위하여 목을 매고 있지요. 그 곁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불안감과 무기력함으로 겉도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일상은 참으로 보잘것없어 보이지요.”

작가로서 ‘작업’한다는 명목 하에 힘겹게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전시 기회를 잡는 것은 녹록지 않다. 작업 비용 마련과 생계를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도 미술학원 강사 등 여러 일을 해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휴일을 반납한 지도 이미 오래됐다.

젊음 하나로 제도권 미술에 거부의 몸짓을 보내고 있는 정윤영 작가. 그는 “기존의 틀을 깬 다양한 시도와 길들이 우리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같은 처지의 작가들이 힘을 모아 탈출구를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누구도 감히 우리를 실격시킬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지요.” 스스로의 존재 확인을 위한 청춘의 아름다운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그를 포함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화려한 학벌도, 전시 경력도 없다. 유일한 무기는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과 당당함이다.

“바로 이것이 저희들의 예술적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고우리(24·건국대 졸), 고주안(26·단국대 졸), 권빛샘(26·경원대 졸), 박민준(26·단국대 졸), 임상선(26·인천 가톨릭대 졸) 등이 전시를 같이 하는 멤버들입니다. 무명이라는 굴레에 굴하지 않는 친구들이지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우리 작가, 고주안 작가, 권빛샘 작가, 임상선 작가, 박민준 작가.
현재 국내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는 이들이 55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아는 유명작가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조바심과 무력감은 작가에겐 가장 큰 적입니다. 그래서 다양성을 제공하는 주체라는 인식이 필요하지요. 오래도록 작가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중과 ‘즐거운 소통’을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승자독식은 예술계에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합니다. 다양한 예술 경험을 차단하기 때문이지요.”

작가의 길도 인생처럼 정답은 없다. 그래도 그는 미대 교수들에겐 ‘특별한 책무’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이 뭔가를 묻듯, 미술대학에도 미래가 있는가를 늘상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 자체가 답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한 해 평균 1만명 이상의 학생이 미대에 입학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1988년 이후 해외 유학이 자유화되면서 금의환향한 미술인들이 대부분 교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명문미술대학으로 분류되는 곳의 교수님들일수록 미술계 대외행사로 바쁘고, 작가로서 자신들의 커리어를 쌓기에 급급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작가로서 살아갈 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ABC조차도 알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지요.”

실제로 많은 졸업생들이 선배 작가 작업실에서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작가로서의 생존법을 배워나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은커녕 용돈벌이도 안 되는 상황이다.

“작가들은 작업에서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동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젊은 작가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질문을 서로에게 종종 던집니다. ‘너는 대가가 되고 싶니? 아니면 그림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니? 아니면 그림을 통해 자아 실현을 하고 싶니? 셋 중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니?’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자아 실현’에 방향성을 두고 있다고 답합니다. 당장 생계 때문에 호구지책을 마련하고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만, 낮은 수입에도 치열하게 작업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제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금전적인 부분에 욕심을 갖는 작가는 소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기꺼이 예술에 헌신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제 제도권 미술의 낙인을 거부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실격’되었다고 자처하며, 제도권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임을 받아들인다. 생산적 거부의 몸짓이다.

“어찌 됐건 저희들은 제도권 미술의 눈에 들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공모전 등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지요. 포트폴리오 등 서류심사에서 수많은 경쟁을 뚫고 면접에 들어갔던 경험이 많아요. 어떤 미술공간의 대표는 저의 전시 기획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해 오기도 했습니다. 거만한 태도로 ‘자신이 노란색을 싫어하니 그림에서 노란색을 뺄 수 있겠느냐, 누드가 들어간 것은 싫어하니 삭제할 수 있겠느냐’며 일방적인 주문이었지요. 마치 제가 1800년대 파리 살롱전에 출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림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일종의 문지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에 의해 작가들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지 없는지 기준이 세워지고, 전시할 자격을 부여받게 됩니다. 하지만 최소한 예술에 종사하는 문지기라면 계급장을 떼고 열린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료비 충당도 안 되는 작업을 수년째 지속하면서 그는 요즘 종종 회의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순수예술작가들에게도 작업은 최소한의 생계수단이며 밥벌이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을 보는 이중 잣대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타협해서는 안 되고, 예술을 하면서 가난을 겪어도 상관이 없고, 명성은 뒤늦게 따를 수도 있다는 점 말입니다. 과연 예술성과 상업성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가 예술성이냐 상업성이냐 하는 ‘오래된 질문’을 또 던져보고 있는 것이다.

“이 참에 미술계의 기득권, 아니 미술계의 마피아는 없는지 미술계에 반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처한 현실은 무척 고단합니다. 미술계가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열린 시선으로 우리 젊은 작가들에게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줘야 합니다. 다소 당돌하게 비쳐질지라도 절박한 저희들의 외침을 한 번쯤은 들어주길 바랍니다. 미래를 향하여 작가와 미술관이 함께 나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견고한 미술권력을 향한 6명의 거친 도전은 이제 시작됐다. 17∼30일 서교동 aA디자인 뮤지엄에서 이들의 가쁜 숨결을 들을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새로운 흐름은 결코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젊은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새 시대를 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의 이번 만남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전시 참여작가들도 함께 모일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에 내몰리고 심야에 전시작품 마무리를 해야 하는 그들을 낮시간대에 마주한다는 것은 ‘결례’에 가까웠다. 우리 청춘들이 그만큼 건강하게 뛰고 있는 것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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