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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돼 큰 인기를 끈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인상적인 장면 하나. 주유소를 점거한 일당 중 ‘무대포’ 유오성이 인질 예닐곱명을 감시하고 있다. 자기 키보다 큰 각목을 들고 있긴 하지만 인질이 많다 보니 은근히 두려워진 유오성이 외친다. “백 놈이든 천 놈이든 난 한 놈만 팬다!” 인질들은 유오성의 그 한마디에 옴짝달싹 못한다. 모두 그 ‘한 놈’이 될까 두려워서다.

2007년 4월16일 재미 한국인 조승희가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에서 총기로 61명을 살상했다. 32명이 죽고, 29명이 다쳤다. 조승희는 오전 7시15분 기숙사에서 두 명을 살해하고 우체국을 다녀온 뒤 강의실 건물에서 2차 범행을 했다. 자살로 막을 내릴 때까지 2시간15분 동안 캠퍼스를 휘젓고 다녔다. 교수와 대학생들은 차례로 당했다. 수백명의 장정이 조승희 한 명의 범행을 막지 못한 것이다. 한 명이라도 목숨 걸고 조승희를 제압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16일 호주 시드니에서 발생한 인질극은 달랐다. 34세의 카페 매니저 토리 존슨은 총으로 무장한 범인에게 달려들었다. 졸고 있던 범인은 존슨에게 총을 쏘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존슨의 영웅적 행동에 맞춰 진압 작전을 펼친 경찰에 사살됐다. 38세의 여성 변호사 카트리나 도슨도 임신한 친구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고 있다 희생됐다. 두 사람의 살신성인으로 나머지 인질들은 모두 무사했다. 존슨의 부모는 “아름다운 우리 아들 토리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구촌의 영웅이 됐다.

우리 주변에도 영웅은 많다. 승객을 구하다 숨진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김기웅·정현선씨, 침몰 당시 부상자들을 돕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이벤트사 대표 안현영씨 등 의사자 5명도 영웅이다. 보건복지부는 그제 물에 빠진 후배를 구하다 숨진 박성근씨 등 6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한 정유업체는 최근 ‘2014 올해의 시민영웅’ 16명에게 상금 1억4000만원을 전달했다. 지하철에서 방화범과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불을 꺼 대형 참사를 막은 역무원 권순중씨, 생명을 구하려고 철로로 뛰어든 대학생 김규형씨, 격투 끝에 살인범을 붙잡은 건축업자 이대식씨, 팔을 물어뜯기면서까지 진돗개로부터 어린이를 구한 회사원 김민수씨 등이다. 평범한 이웃들이다. 날씨는 춥지만 영웅들 덕분에 마음은 따뜻한 겨울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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