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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터의 터키 견문록⑤] 점점 사라져가는 사교의장 '터키탕'

입력 : 2014-12-18 21:58:18 수정 : 2014-12-26 10: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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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처럼 탕에 몸 담그지 않고
따뜻한 대리석 평상에 누워 몸 지져
샤워때도 개인 부스… 나체 몸 안보여
앙카라에 첫눈이 내렸다. 여름에도 날씨가 건조한 편인데 겨울이 되니 빵빵하게 틀어대는 난방 탓에 피부가 더 바짝바짝 마르는 듯하다. 프랑스 친구 마린이 겨울맞이로 여자 둘이서만 오붓하게 마사지 받으러 가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한 터키 친구로부터 시내중심가 크즐라이 근처에 마사지를 잘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찾아 나섰다.

모바일 지도에 주소를 입력한 후 GPS(위성항법장치)를 따라 가다가 드디어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가려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터키 아저씨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에르켄(남자)!” 자세히 보니 에르켄이라고 쓰인 작은 표지가 있고 조금 더 옆에 카든(여자) 입구가 있었다. 당황해서 얼른 발길을 돌렸지만 마사지숍 들어가는 문이 왜 남녀가 따로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분수와 함께 안락의자들이 비치된 대중목욕탕 휴게실이 고급스럽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비닐봉지 두 개를 받았다. 신발 한쪽씩 씌우라고 주는 고무줄이 있는 봉지다. 터키에서는 종종 자미(이슬람 사원)나 중요시하는 유적지에 들어갈 때도 이런 비닐봉지를 나눠준다. 지하로 내려가니 우리나라 목욕탕에서 보던 풍경이 펼쳐졌다. 넓은 대기실에 아주머니로 보이는 예닐곱 명이 속옷 바람으로 텔레비전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호텔 리셉션과 같은 고급스러운 카운터와 단정한 안내원을 기대했던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기 상호는 예니셰히르 하맘이다. 신도시 이름에 하맘은 공중목욕탕을 뜻하니 마린과 나는 마사지숍이 아니라 ‘신도시 목욕탕’쯤 되는 공중 탕에 온 것이다.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멍하니 서있는 나와 마린에게 수건과 열쇠를 건넸다. 탈의실을 찾는다고 둘러보니 빽빽이 들어찬 사물함 대신에 여러 개의 나무문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 열쇠에 쓰인 9를 따라 9번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행별로 배정된 방에 짐을 두고 옷을 갈아입는 식이었다. 속옷도 벗어야 하나 난감해서 문을 빼꼼 열고 물어보니 입고 나오란다. 속옷을 입은 상태로 몸에 수건을 두르는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수건이 아니라 터키에서 종종 보는 얇고 거친 소재의 수건이다.

목욕은 하지 않고 마사지만 받겠다고 하니까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우리를 각각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아로마 오일 마사지가 한 시간에 60리라(약 3만원). 아주머니의 시원한 손맛에 노곤해지는 기분을 만끽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하지만 마린도 나도 오일 범벅이가 돼 샤워가 필요했다.

목욕은 한 사람당 25리라(약 1만2500원). 잠깐 씻기를 돈이 아까워 참고 간다니까 아주머니가 인심 좋게 공짜로 씻고 가라 한다. 신나서 ‘촉 테셰퀼레르(정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한 층 아래 있는 탕안으로 내려갔다.

우리나라 목욕탕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열탕·온탕·냉탕·녹차탕 같은 건 보이지 않고 가운데에 육각형 모양의 널찍한 대리석 평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평상을 괴벡타쉬라고 부른다. 터키의 목욕문화는 탕에 몸을 담그는 습식이 아닌 건식이다.

입구 근처에 샤워 부스 여섯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때를 민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몸을 씻는 곳이지만 나와 마린은 바로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역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구조로 다른 사람들이 속옷을 벗고 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해놓았다. 탈의 공간이 비개방형인 데다 속옷을 입고 수건을 두르고 다니는 것과 샤워부스가 가려진 것에서 나체를 남에게 보이는 것을 금기시하는 터키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터키의 하맘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이다. 터키 친구들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가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아무도 안 간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하맘은 구도시 쪽으로 가야 많고 관광객이 주고객인 하맘도 있다. 하지만 결혼 전에 예비 시어머니가 며느리 될 사람을 하맘에 데리고 가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곧 가족이 될 두 여자가 땀을 흘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정겨워진다.

앙카라=김슬기라 리포터 giraspir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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