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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삶에서 ‘인생의 이치’ 풀어내다

입력 : 2014-12-19 20:12:33 수정 : 2014-12-19 20: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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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튼후 5년간 뿌리만 성장한 대왕송에서 철저한 생존전략을
나무뿌리 기생하는 균근에선 타인과 손잡는 공생의 지혜 배워
신준환 지음/알에이치 코리아/1만5000원
다시, 나무를 보다/신준환 지음/알에이치 코리아/1만5000원


어느 한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살아온 삶의 경험만으로도 인생의 도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 철학자처럼 세상의 이치에 대해 직접 고민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의 가슴 속에는 타인과 다른 삶의 방식과 진리가 담기는 것이다. 그런 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철학자들의 삶에 대한 충고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우리 삶에 지침을 내려주기도 한다.

‘다시, 나무를 보다’는 국립수목원장을 지낸 신준환이 낸 에세이집. 공직자를 지낸 인물이기는 하지만 산림과학을 공부하고 연구원을 거쳐 국립수목원장에 이르렀으니 사실상 평생을 자연과학자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인문철학서에서 만날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경험과 맞닿은 삶의 충고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저자는 나무에 바친 평생의 삶을 우리 인생에 대한 생각으로 바꿔서 풀어낸다. 이는 대부분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나무에 대한 지식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에 대한 얕은 상식과는 다른 자연과학자만이 알 수 있는 진짜 지식들이다. 해외의 과학실험, 국내 연구자들의 저작물 등 저자가 자연과학자로서 살아오면서 모아온 다채로운 데이터들이 총동원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지침으로 연결된다. 

저자가 직접 카메라에 담은 사계절 속 나무들의 모습. 한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오며 깨달은 삶의 이야기와 직접 찍은 사진이 어우러진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한나절 삼림욕을 한 듯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예를 들어 건조한 미국 남부에 분포하는 대왕송은 씨앗에서 싹이 트면 5년 동안 싹눈은 지표에 머물러 있는 반면 뿌리만 성장한다. 그러는 사이에 뿌리 주변에 불에 강한 바늘잎이 빽빽이 형성된다. 지표에 불이 나도 싹눈을 보호하기 위한 대왕송의 전략이다. 일단 이렇게 불에 대한 저항성을 획득하게 되면 대왕송은 오히려 불을 통해 종족의 번식을 도모한다. 자신의 약점인 잎에 기생하는 곰팡이를 산불을 통해 제거하는 것. 이와 같이 나무가 산불이라는 매우 위협적인 외부요소를 생존전략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시련을 견뎌야만 성장할 수 있는 인생의 이치를 이야기한다.

나무뿌리에 기생하는 균근과 나무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육상식물의 97% 이상에서 발견되는 균근은 나무뿌리에 기생하는 곰팡이. 균근 곰팡이는 뿌리에 붙어 살며 나무의 영양분을 얻는 대신 나무가 인산과 질소 등을 잘 흡수하게 해 생장을 돕는다. 이러한 공생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타인과 손잡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책은 나무와 한평생 함께하며 깨달은 인생의 이치를 담담히 풀어나간다. 막연히 ‘이래야 한다’는 충고가 아닌 자연의 이치에 기댄 이야기라 더 울림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여러 시인의 시와 본인의 자작시 등을 통해 나무의 인생학, 사회학, 생명학을 풀어놓기도 한다. 저자가 낸 성인 대상의 첫 번째 에세이집임에도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책 속에 “이 책의 저자는 실로 높은 단계의 문장력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릴 것이 틀림없다”는 고은 시인의 추천사가 실려 있는데,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과학자와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틈틈이 쌓아온 문장력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책과 함께 실려 있는 사진들도 읽는 재미를 북돋운다. 저자가 국내와 해외를 두루 돌아다니며 찍은 나무와 꽃들의 사진으로 보기도 좋지만 책의 내용과도 잘 어우러진다. 꽃피는 봄부터 녹음이 우거진 여름, 붉은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흰 눈이 가지 위에 소복하게 쌓인 겨울까지 사계절 숲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다. 저자의 나무 이야기를 사계절 숲의 모습과 함께 읽다 보면 한나절 삼림욕을 한 듯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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