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위기에 빛을 발하는 것은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금은 ‘진짜 화폐’, 종이돈은 금을 담보로 발행하는 형식적 화폐였다. 1971년 달러의 금 태환제가 폐지될 때까지 금은 궁극의 진짜 화폐였다.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 금이 ‘최후의 결제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 같은 역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송종길 이사는 “금은 가치보전과 환금성이 뛰어나 위기 시 인기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 마크 파버는 2012년 11월 방한 당시 “종이돈과 미국 국채를 믿지 말고 금을 사두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자산가들에게는 5만원권으로 현금화해두는 것도 인기라고 한다. 5만원권 환수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의 5만원권 발행잔액은 지난달 기준으로 50조원을 돌파했는데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환수율은 27.3%로, 작년(48.6%)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은행의 상품 판매에서도 감지된다. 기준금리 인하로 예금 금리가 뚝뚝 떨어지자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8월 2조7000억원, 9월 6000억원가량 줄다가 10월 들어 2조3800억원가량 늘면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올 들어 정기예금의 대안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주가연계신탁(ELT)과 주가연계펀드(ELF)의 신규 유입액은 급격히 줄었다. 시중은행의 ELT·ELF 유입액은 올 들어 급격히 늘어 10월에는 판매액이 7610억원까지 치솟았으나 지난달에는 206억원으로 급감했다. 올해 월평균 판매액 6000억원의 30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시중은행 수신 담당 임원은 “두어 달 전까지는 0.1%포인트라도 수익률을 높이자는 분위기가 지배했다면 지금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무조건 내 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재연 KDB대우증권 PB클래스 이사는 “중위험·중수익 얘기가 많았지만 이미 부자들은 저위험·저수익 투자로 돌아서는 분위기”라며 “위험 회피와 원금 보전이 당분간 재테크의 흐름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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