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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시대, 장애인 예술을 말하다] "노력에는 차별없어… 자신감 갖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야"

관련이슈 '문화융성'시대, 장애인 예술을 말하다

입력 : 2014-12-22 20:15:47 수정 : 2014-12-24 09: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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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장애인 예술가 6人의 조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서양 격언은 예술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널리 인용된다. 세계일보는 지난 7월부터 ‘문화융성 시대, 장애인 예술을 말하다’ 시리즈 기사를 보도하며 예술로 삶을 채워 온 여러 장애인과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기나긴 예술의 길에서 장애는 ‘방해물’보다는 ‘동반자’에 가깝다. 장애를 극복한 예술, 장애와 함께한 예술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장애를 딛고 예술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은 예상과 달리 고단함을 호소하거나 성취감을 드러내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평온했고, 어조는 담담했다. 그동안 겪은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으나, ‘장애가 있든 없든 예술의 길은 어차피 힘들고 고독한 것’이란 일념으로 버틴 듯했다. 본지는 심신의 고통에 창작의 아픔까지 감내하며 예술의 길을 내달리는 장애인 예술가 6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그들이 사회에 들려주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연재를 마친다.


“예술에서 장애는 문제안돼… 성과가 중요”

‘지체장애 소설가’ 고정욱

어려서 독서를 많이 하고 좋은 스승에게 배워 작가가 되는 길에서 어려운 점은 별로 없었습니다. 정작 두려웠던 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작품을 독자들이 폄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기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장애를 소재로 작품을 쓰면서 더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장애 예술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자 예술인, 다문화 예술인 등으로 용어를 구분지어야 하겠지요. 물론 장애 때문에 예술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장애 자체가 주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장애로 인한 사회적 어려움입니다. 장애인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순수한 예술에는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완성도 높게 다듬어 남들에게 보여주려면 초인적 노력과 압도적 성과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리고 노력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 ‘지체장애 소설가’ 고정욱

▲1960년생 ▲지체장애 1급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 ‘까칠한 재석이가 돌아왔다’ 등


“이론 등 많은 공부 통해 자기 것 만들어야”

‘휠체어댄스 亞 최강’ 김용우


장애인 무용 같은 경우는 지금 아직 초창기입니다. 경제적 문제를 비롯해 어려운 부분이 여럿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단순한 무용인을 넘어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기간에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면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들도 예술적 감흥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공연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누군가 만들어준 안무를 받아 공연할 수도 있지만, 내가 직접 안무하고 연출해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것과 차이가 있죠.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이론을 포함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중심을 잡을 수 있고, 예술가로서 떳떳이 설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일깨워야 합니다. 무대 위에서 뭔가 표현하는 것은 기본이고 연출부터 스토리 구상까지 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휠체어댄스 亞 최강’ 김용우

▲1972년생 ▲1997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휠체어댄스스포츠 아시아경기대회 4년 연속 우승, 세계선수권대회 4위 입상


“간절함 잊지 말고 한 걸음씩 나아가길”

‘양손 없는 화가’ 석창우


가장으로서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데 이것을 아내한테 맡기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항상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하는데, 부부가 함께 움직이게 되면 가정의 경제 활동은 못하게 되니 그 또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처럼 양손이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요.

저는 어린 자식이 커가면서 양팔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빠보다는 양팔이 없어도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간절히, 절실하게 찾았더니 그림이 제게 왔습니다.

자신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비록 몸은 불편하더라도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가족의 희생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점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 ‘양손 없는 화가’ 석창우 약력

▲1955년생 ▲1984년 사고로 두 팔의 팔꿈치 아래 절단 ▲해외 전시회 11회 포함 개인전 36회 개최,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작품 ‘세종대왕’ 수록


“‘넌 안돼’ 말렸지만… 제 자신을 믿었죠”

‘장승공예 20년’ 김윤숙


저는 몸의 기능 중 3분의 1가량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 작업은 못하고 소품 위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장애인 하면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이가 많다 보니 어떤 작업을 해도 ‘장애’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장애인이 만든 물건은 질이 낮을 거라는 편견도 여전합니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만큼 전시, 행사 등에 제약이 따릅니다.

그래도 후배 장애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공예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 10명이면 10명 모두 못할 거라고, 안 될 거라고 저를 말렸습니다. 혼자 앉지도 못하는 사람이, 양팔도 못드는 사람이 어떻게 장승을 깎냐고요. 그랬던 제가 장승 공예를 한 지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김윤숙 하면 다들 장승, 솟대 만드는 사람으로 인정해줍니다. 스스로 믿고, 묵묵히 걷고, 당당하게 자신을 꽃피우세요.

■ ‘장승공예 20년’ 김윤숙 약력

▲1971년생 ▲1992년 추락사고로 척수장애 ▲장애인기능경기대회 목공예부문 은메달,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선정 ‘문화상품’ 등재


“재능 있는 장애인… 꾸준한 뒷바라지 필요”

‘자폐성 장애 소리꾼’ 최준


장애인이라서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실은 예술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보통 25살 정도의 청년이면 자기 앞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소통이 힘들어 어머니가 중간에서 도움을 줘야 합니다. 다른 연주자와 협연 등을 할 때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어렵다 보니 어머니가 중간에서 전달을 하는데, 이 또한 음악적 수준이 차츰 높아지니 비전문가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무대가 많지 않은 것도 힘든 부분입니다. 어쩌다 공연 의뢰가 들어와도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가 아니라 장애인으로서 감동을 줘야 하는 자리에 많이 불러주셔서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커요. 예술에 재능과 관심이 있는 장애인의 가족에게 “힘들더라도 꾸준히 뒷바라지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자폐성 장애 소리꾼’ 최준 약력

▲1990년생 ▲자폐성 장애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우승,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비학교 수료,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부가’ 수료


“보통 사람 보다 더 큰 성취감… 짜릿하죠”

‘실명’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


음대에 입학할 때 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 대학이 있었고, 합격한 뒤에도 불합격 위험에 처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때 너무 힘들어서 캐나다 이민을 알아본 적도 있고요. 지금도 후배들에게 “음악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진짜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걸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것 속에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애인이라 더욱 주목을 받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왕에 벗어버릴 수 없는 장애라면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말 대차게, 열심히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이 극복한 장애와 그 성과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엄청난 결과물을 낳을 수 있으니까요.

■ '실명'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 약력

▲1967년생 ▲1973년 교통사고로 실명 ▲1997년 미국 피바디음대 박사학위 취득 ▲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 단장

서필웅·김승환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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