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정진의청심청담] 오늘의 인문학적 사대·식민주의를 걱정한다

관련이슈 박정진의 청심청담

입력 : 2014-12-22 21:24:00 수정 : 2014-12-22 21:24: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선진문물 배우고도 자기화 못해
사대 의식 갖고 문화대국 못 만들어
오늘의 사대 식민주의는 과거 역사에서 그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남을 비난하듯이 사대 식민주의를 비난한다. 그러나 실은 오늘날 우리가 그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오늘의 지식인, 지도층이 그렇게 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혹은 미국에서 우리를 지배자의 입장에서 깔보는 것은 과거의 역사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그러한 처지의 한국 지식인·지배층을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너희 국민들 앞에서는 잘난 체하고, 뽐내고 속여라. 무슨 거대한 지식이나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고 사회적 지위나 즐겨라. 그런 후에 뒤로는 우리에게 비밀스럽게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관용을 구하고 용서를 빌고, 간사하게 굴어라.”

왜 한국인은 하나같이 미국에 유학하면 미국을, 영국에 유학하면 영국을, 프랑스에 유학하면 프랑스를, 일본에 유학하면 일본을 숭배하게 될까. 칸트를 전공하면 칸트를, 니체를 전공하면 니체를 숭배할까. 왜 숭배에만 그칠까? 정말 사대 식민주의가 철저하게 골수에 박인 민족인가. 사대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왜 한국인은 스스로 자신이 되지 못할까. 선진문물을 배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선진문물을 배웠으면 토착화하고 자기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항상 남의 눈만 쳐다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선진국이나 주변국에 의존한다.

오늘날 몇몇 방송에서 진행하고 있는 토크쇼나 토론프로그램을 보아도 모두 자신(주체)은 간 곳이 없고, 그저 세계적인 현상들과 세계적인 문제의식과 그들이 제안한 해결 방안이 있을 뿐, 한국이라는 변수가 들어간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말하자면 아직 한국인은 세계적인 지평에서 자문자답하는 기본적인 문화독립 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한국에는 오직 기업들만 기업생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 인문학은 모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이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처럼 인문학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토크프로그램이 자생 인문학의 불모지임을 드러낼 뿐이다. 한국은 아직 세계적인 인문학 이론이나 법칙을 제안해 본 경험이 없다.

일찍이 단재는 “한국은 불교가 들어오면 ‘한국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한국’이 되고, 주자학이 들어오면 ‘한국의 주자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자학의 한국’이 되고,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의 기독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한국’이 된다”고 통탄한 적이 있다. 한국인에게 주체성이 없음을 갈파했다.

주체성이 없으니 결국 역사에서 사대를 하거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아직도 성리학 시대로 돌아가야 나라의 도덕이 회복된다고 주장하는 학자 무리가 있는가 하면, 미국이 없이는 자주국방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장군들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오늘의 사대 식민주의자들이다.

철학자들도 모두 제 전공, 즉 남(외국)의 철학에 빠져서 자신의 철학을 하지 못하고, 동서고금의 철학을 융합하여 오늘의 우리 철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철학자가 제가 전공한 유명 서양 철학자들의 전도사가 되고 있으니 자생철학이 될 수 없다.

왜 한국인은 주체성, 예컨대 자아와 역사적 자아가 없을까. 중국 사대주의 때문에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나 실증주의를 빌미로 식민사학을 했던 이병도 같은 인물이 여전히 학계나 문화예술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의 사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진문물을 먼저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문화권력을 행세해야 한다고. 참으로 입맛이 쓰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책을 쓴 이덕일 박사는 “오늘의 국사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 때보다 더 심각한 식민사학이 되었다. 다시 고조선의 패수는 대동강이 되어 고조선의 강역이 한반도로 줄어들었고, 임나일본부는 옛날에는 가야의 한 지역에 있던 것이 이제 남한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인문학이 이렇게 사대 식민주의의 볼모가 된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유수의 대학의 국사·역사학과나 철학·동양철학과가 모두 중국이나 일본, 서양의 인문학적 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이들은 특정 종교나 종파의 목사나 신자와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인은 자신의 ‘정신’을 모두 다른 나라의 ‘신’으로 바꾸어 버리는 특성이 있다. 정신은 신이 되어 버린다. 이는 토착의 신이든, 외래의 신이든, 어떤 종류의 신이든, 신으로 모시고자 하는 신들림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한국문화의 여성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문화가 주체성이 없어진 이유는 또 한 가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역사문화적 환경 탓이다. 조그마한 업적을 쌓거나 이런저런 연줄로 권력이 생기면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오염 때문이다. 이는 저마다 골목대장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잘못된 샤머니즘적 전통 때문이다. 무당에게는 저마다 제가 모시는 신주만 최고이다. 다른 고등종교처럼 체계적인 교리나 조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저마다 잘나서 분열하고 당쟁하고 파당하면서 ‘선무당’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큰 지도자가 나오기 전에 풍토적으로 싹이 잘려버린다. 이런 나라에서 어찌 청출어람(靑出於藍), 후생가외(後生可畏)가 나오겠는가.

오랜 사대종속적 관행, 남의 문화를 모방하거나 표절하면서 저자세로 살아온 노예적 사고나 습성은 하루아침에 떨쳐버릴 수 없는가 보다. 아직도 사대가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인 줄 착각하는 지식인이 한둘이 아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최지우 '여신 미소'
  • 최지우 '여신 미소'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
  • 뉴진스 다니엘 '심쿵 볼하트'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