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태 지휘자는 매년 연말이면 부모가 없는 중증장애 아동들을 찾아 음악 선물을 풀어놓는다. |
“아이들이 자기 의지와 관계 없이 소리를 내요. 노래하는데 중간에 박수도 쳐요.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거죠. 어떤 때는 연주 중에 한 아이가 소리 지르면 다들 따라서 ‘와’ 하고 소리를 질러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럴 때 ‘내가 클래식 음악가이니 이 아이들도 조용히 감상해야 해’라고 내 생각을 고집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 음악을 얼마나 이해할까 싶지만, 주몽재활원 측에서는 음악회가 아이들의 정서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서 지휘자는 “2007년 청각장애아동 시설에서 우리 음악회에 오고 싶다고 요청해왔을 때 의아해했다”며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공연을 보느냐 했더니 ‘듣지는 못하지만 느낄 겁니다’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공연에서 서 지휘자는 진땀을 흘렸다. 청각장애 아동들이 연주를 보다가 좋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만난 한 관객은 “내 인생에 봤던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라고 말했다.
서희태 지휘자와 소프라노 고진영 부부. |
“2004년쯤에야 생활이 안정됐어요. 유학 시절에는 빈곤에 허덕였어요. 1997년 귀국했는데 일주일쯤 후에 구제금융 사태가 터진 거예요. 일거리가 없었죠. 7년 정도 무명으로 지냈어요. 15평 연립주택에서 아이 둘을 길렀으니 나눔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죠.”
나눔의 정신은 윤 원장에서 이들에게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재활원 공연에는 매년 많은 이들이 봉사를 자처한다. 올해는 세계 악기 연주자 조현철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사이다. 피아니스트 장유리씨도 흔쾌히 나섰다. 재작년에는 배우 오광록씨가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줬다. 다른 이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탠다. 올해는 뷔페 식당 드마리스, GS 자산운용, 모자 디자이너 천순임, EXR코리아, 동일곡산, 주식회사 얼터가 음식이나 후원금, 간식을 보내왔다. 서 지휘자가 다리를 놓아 참여하게 된 이들이다.
“기부 공연을 하고 나면 우리도 아이들을 통해 감동을 받아요. 내가 무언가 나눌 수 있는 상황이라는 데 감사함이 생기죠. 흔히 하는 말로 마음이 풍요로워져요.”
나눔 활동과 별도로 서 지휘자는 최근 ‘놀라온 오케스트라’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악단은 오케스트라 소리의 매력을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으로 지난해 3월 만들어졌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이별하는 ‘삶’을 주제로 공연하거나 올해 힘들었던 일을 희망적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에서 희로애락 대신 ‘희놀애락’이란 이름으로 공연하는 등 클래식이 낯선 이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서고 있다. 내년 2월에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즐기는 공연을 계획 중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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