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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건성으로 풍월만 읊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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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22 21:28:52 수정 : 2014-12-22 21: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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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내부분열 심화 우려
무늬만 개혁 말고
국민대통합
국정개혁해야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여행하고 다녀온 뒤 펴낸 ‘열하일기’에서 중국과 조선의 수레(車) 제도의 현격한 차이를 비교하며 긴 한숨을 내쉰다. “중국에선 수레가 국가 경영의 중요한 도구로서 수천 수백 가지 용도로 쓰인다. 중국의 풍부한 재화와 물건이 전국 곳곳으로 옮겨 다닐 수 있는 것도 수레 덕분이다. 조선은 수레가 있어도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않고 수레바퀴의 간격이 일정하지도 않으니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고을이 험준해서 수레를 사용할 수 없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니 사방 수천리밖에 되지 않는 좁은 강토에서 백성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할 수밖에 없다.” 연암은 “수레가 다니지 않는 것은 성인의 저술을 입으로만 외울 뿐이고 정작 수레를 만드는 법과 수레를 부리는 기술은 연구하지 않는 한심한 선비와 벼슬아치들 때문”이라고 탄식한다.

5000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잘살았던 시절은 지금 이 시간 말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은 세계 1위 경제대국 자리를 놓고 미국과 다투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9조1814억달러로 한국 1조3043억달러의 7배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사는 것은 우리가 중국보다 낫다. 그러나 회사를 설립한 지 4년 만에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사로 성장해 삼성을 제치고 중국 스마트폰 판매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샤오미 같은 회사들이 무섭게 뛰고 있다. 날이 갈수록 한국은 내리막길이고 중국은 오르막길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머지않아 우리는 다시 중국의 꽁무니만 쳐다보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 경제의 앞길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입으로만 ‘위기’를 떠들었지 하는 모양은 구름 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바람 잘 날 없는 사회가 또다시 평지풍파에 휩싸였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좌·우, 보수·진보의 대립과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지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거들고 나섰으나 지금부터가 걱정이다. 법이 아닌 국민의 이름으로 통진당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저들에게 ‘반독재 투쟁’의 핑계거리만 준 것은 아닌지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다. 갈등을 치유하지 못하면 그 틈을 타고 극단세력이 춤을 춘다. 생명력 질긴 주사파의 끊임없는 파상 공세를 막아내는 데 또 얼마나 많은 힘을 써야 할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국민통합이 시급하다. 청와대가 앞장서야 한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노동시장·공공·교육·금융 4대 부문 구조개혁만으로는 쇄신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변죽만 울리는 ‘무늬만 개혁’ 말고 진짜 개혁을 해야 한다. ‘행복시대’ 개막을 알렸던 박근혜 후보 당선이 두 해를 넘겼으나 대선 때 듣고 보았던 장밋빛 구호들 모두가 그림의 떡이 됐다. 잔칫상에 차려진 것이 없으니 모든 낯빛이 어둡다. 국정개혁의 첫 단추는 소통이다. 수첩 인사, 깨알 지시, 받아쓰기 내각, 인사 난맥, 오만과 독선의 불통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든 ‘찌라시 수준의 얘기’이든 ‘억울한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 얼어붙은 시민의 가슴도 녹일 수 있다.

통진당 해산 결정에 한 표를 던진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이 ‘로마 멸망은 내부 분열과 혼란 때문이 아니라 과업을 너무나 빨리 이룬 번영 때문’이라는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분석을 인용했다. 우리는 아직 번영의 과실을 맛본 적이 없다. 이제 겨우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넘기고 비로소 먹고살 만해져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한강의 기적’을 꽃피우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게 된다면 번영 때문이 아니라 내부 분열과 혼란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제 살 깎아먹기에만 열중한다면 연암이 개탄했던 200여년 전의 조선사회로 돌아가는 꼴이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건성으로 풍월만 읊는 그런 사회 말이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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