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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기도… 영주 부석사와 봉화 축서사 ‘낙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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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25 22:37:14 수정 : 2014-12-30 15: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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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부석사와 봉화 축서사는 흔히 ‘형제 사찰’로 불린다. 부석사는 우리 땅의 대표적인 절집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축서사라는 이름은 외지인에게 낯설게 들릴지 모르나, 예전부터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영험한 기도처로 이름이 높았다.

부석사와 축서사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두 절집 모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의상대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축서사를 짓고 나서 3년 뒤 부석사를 지었다. 규모는 부석사가 훨씬 더 크지만, 산자락에 일자로 뻗은 축을 따라 양 옆에 가람을 배치한 양식도 흡사하다. 절집 문루에 오르면 소백산맥의 연봉이 시야에 가득 차는 점까지도 유사하다. 그래서 3년 먼저 지어진 축서사는 ‘부석사의 큰집’으로도 불린다.

부석사는 세밑에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만한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무량수전 앞에서 마주하는 소백산맥의 해넘이는 우리 땅에서 장엄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부석사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축서사의 소백을 붉게 물들이는 저물녘 풍경 역시 부석사와 닮았다.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꼽히는 경북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옆에서 마주한 해넘이 풍경. 눈 덮인 안양루 너머 저무는 해가 소백산맥의 능선을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지난 한 해의 묵은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는 각오를 다지기에 이만 한 곳도 없을 것이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의 문수산 자락에 들어선 축서사. ‘독수리 축(鷲)’ 자에 ‘살 서(棲)’ 자를 쓰니 ‘독수리가 사는 절집’ 정도로 해석이 된다.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불가에서 지혜는 곧 문수보살을 의미한다. 산 이름을 문수라고 붙인 것도 이 절집에서 유래했다. 축서사 창건 설화는 산 아래 절집인 지림사에서 시작된다. 지림사 스님이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한 동자가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그 동자는 자신이 청량사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렸고, 불상만 남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신 곳이 현재의 대웅전 터라고 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출현했다고 해서 산 이름도 문수산으로 불리게 됐다.

축서사의 건물들은 아쉽게도 부석사처럼 오랜 연륜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조선 말에 큰 화재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 때 의병을 토벌한다며 불을 놓아 전소됐다. 현재 ‘보광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대웅전을 빼고는 모두 새로 지은 것들이다. 축서사에서 만난 70대 할머니에 따르면 자신의 젊은 시절, 축서사는 대웅전과 달랑 초가 한 채만 있었다고 한다.

해질녘 봉화 축서사 진신사리 오층석탑 앞에서 기도 드리는 할머니.
대부분의 건물이 지은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들어선 자리와 전망이 워낙 빼어나 제법 운치가 있다. 절집 한복판에 우뚝 솟은 진신사리 오층석탑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해가 오층석탑에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수㎞나 되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산길을 혼자 걸어 올라 축서사를 찾은 저 할머니는 탑에서 무엇을 저리 간절히 빌고 있을까.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자락에 자리한 부석사는 아름답다는 경탄을 넘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절집이다. 우리 땅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부석사는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 절집 건축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위대한 건축’이라고 극찬한 것도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유홍준이 설명한 대로 부석사는 불교 교리의 상징체계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의상대사는 천왕문에서부터 크게 삼단씩 이뤄진 세 개의 계단, 즉 모두 아홉 단의 돌계단을 만들어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무량수전에 이르도록 했다.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9품 만다라, 즉 9단계를 상징한다.

눈밝은 사람이라면 천왕문에서부터 여섯째 계단의 범종각까지 남서향으로 곧게 뻗은 축이 일곱째 계단부터는 왼쪽으로 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그 위 안양루는 좀 더 왼쪽으로, 무량수전은 더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왜 그랬을까. 여섯째 계단까지는 지형에 순응해 남서향으로 지었으나, 무량수전은 최대한 정남향이 되도록 축을 굴절시킨 것이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옆에 서자 소백의 능선과 절집 건물 위로 웅혼한 해넘이가 펼쳐진다. 이 절집에 담긴 깊은 의미를 들었기 때문일까. 이번 석양은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감동은 어느새 감사와 용서, 그리고 새해를 향한 의지와 용기로 이어진다.

영주·봉화=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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