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진호의중국을보고세상을읽다] ‘일국양제(一國兩制)’와 주권

관련이슈 김진호의 중국을 보고 세상을 읽다

입력 : 2014-12-26 21:18:45 수정 : 2014-12-26 21:38:2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한 나라의 두 가지 제도’를 의미하는 중국의 통일정책이다. 중국은 1979년부터 ‘대만 동포에 알림’(告臺灣同胞書)이라는 내용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해 가면서, 1981년 9월 30일 ‘대만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방침과 정책(예젠잉 9조)’을 발표한다. 1982년 9월 24일에는 덩샤오핑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영국 대처 총리를 접견하며, ‘일국양제’를 통한 홍콩 반환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며, “주권문제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고 단정 지었다. 이로써 영국의 홍콩에 대한 포기가 결정지어지게 된다. 1983년 6월 25일에는 ‘덩샤오핑 6조’가 발표되는데, 그 내용 3조에는 ‘대만이 완전한 자치를 한다면 두 개의 중국으로 하나의 중국이 아니기에, 자치는 국가이익에 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일국양제’의 내용이 설명된다. 즉, ‘일국양제’는 중국이 외교적 ‘평화공존원칙’에 입각한 덩샤오핑의 ‘하나의 중국’ 통일정책으로, 그 핵심은 중국의 주권에 있는 것이다. 이 정책은 현재 1997년 귀속된 홍콩과 1999년 귀속된 마카오 특별행정구(SAR)에서 적용되고 있다.

1949년 공산당에 의해 건국된 ‘봉건주의·식민통치·제국주의에 반대한다’(反封建, 反帝國, 反植民)는 중국의 건국이념도 주권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중국은 아직도 국가통일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 시기부터 대만통일 원칙을 ‘일국양제’, ‘하나의 중국 원칙’(一個中國原則), ‘분열과 대만독립 반대’(反對臺灣獨立和分裂)와 ‘외세 간섭 배제 정책’을 취하면서 양안 간 교류 확대를 추진하며 대만의 국제적 고립유도를 추구해 왔다. 대만은 장제스·장징궈 시절 ‘삼민주의’로 중국을 통일하자는 정책을 펼쳐왔으나, 대만 민진당의 출현은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을 형성하게 됐다. 이러한 양안 간의 관계, 그리고 홍콩·마카오의 반환과정에서 일국양제는 발전해 왔다. 그 사상적 적용은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 전회에서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체제는 사회·자본주의 두 개를 병행할 수 있다’는 개혁·개방사상에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마카오 주권귀속 15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국양제는 기본 국책’이라며 “어떤 어려움과 도전이 있더라도 일국양제에 대한 신념과 결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시 주석도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정책을 견지하며 조국통일목표에도 공산당의 건국정신인 주권의식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 주석이 ‘중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기초가 될 것이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이자 일국양제 이론의 창시자인 덩샤오핑 문선 제3집에는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하는 데는 범위와 표준이 있다고 했다. 그 주체는 중국에 대한 애국적 인사가 홍콩을 통치해야 하고, 미래 홍콩정부는 애국적 인사로 채워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중국의 지도자는 건국에서 현재에 이르는 동안 주권을 최상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고, 정치가 있고 행정이 있고, 경제와 외교가 있다는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