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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게 없는 시장… 사람의 냄새 가득

입력 : 2015-01-15 21:06:28 수정 : 2015-01-17 14: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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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44〉 버스 타고 ‘산크리스토발’로
시내버스를 타려고 할 때 종착지가 ‘산크리스토발’이라고 쓰여 있는 버스를 자주 봤다. 지도에서도 가까워 보였다. 산크리스토발 주의 주도로 작은 도시다. 산크리스토발은 ‘성 크리스토프로스’에서 나온 말로 다른 나라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다. 스페인이 지배했던 나라라면 하나쯤은 있는 지명인가 보다. 무작정 산크리스토발이 종착지인 버스를 탔다.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고속도로를 달려서 한 시간가량 갔다. 버스가 중간에 정차를 많이 해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디서 내릴지 몰라서 도시 중심부로 보이는 곳에서 무작정 내렸다. 사람이 많았고, 시장이 있어 보여 내렸다. 카메라를 들고 내리니, 사람들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아마도 이곳에 동양인이 없나 보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사람들이 자기도 찍어달라고 자세를 취한다. 사람들이 사진촬영에 호의적이다. 

과일은 조각으로 팔기도 하고, 접시에 담아 주기도 한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악취가 났다. 온갖 쓰레기가 길 한가운데 쌓여 있었다. 언젠가는 치우겠지만, 냄새 때문에 코가 찡긋하다. 가게에는 갖가지 채소와 과일이 쌓여 있다. 그제야 알게 됐다. 산토도밍고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사람들이 산크리스토발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다. 도심 길거리의 채소 상인들은 많은 양이 아니라, 대부분 바구니 하나씩을 놓고 팔고 있었다. 바로 이곳 사람들이 산토도밍고로 오는 것이다. 이곳에서 과일과 채소가 생산되니 가격도 산토도밍고보다 훨씬 쌌다. 산크리스토발 사람들은 시장에서뿐 아니라, 큰 길가에서도 과일을 많이 팔고 있다. 레몬과 망고를 예쁘게 쌓아 올려 지나가는 차 안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했다.

희한한 물건도 거리에서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거리 풍경과도 비슷할 것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은 것도 우리나라와 닮았다. 이곳에선 양탄자부터 레몬까지 별걸 다 판다. 지역마다 각자의 특산품을 팔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다른 물건을 볼 수 있었다. 산크리스토발에서는 과일은 기본이고, 말린 고기를 팔고 있었다. 한 덩어리가 너무 커서 어떻게 먹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도로에서 파는 말린 고기는 너무 커서 어떻게 먹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무언가를 사는 이유는 그게 지역 특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만 파는 물건, 그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이 있다. 우리나라 호두과자가 천안에서 잘 팔리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소를 많이 키우는 지역에서는 생우유와 생치즈를 팔고, 레몬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레몬을 쌓아 놓고 팔고 있다. 물론 도시의 대형 마트에서는 모든 물건을 팔지만, 모두가 도시에 사는 건 아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장에는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런 시장을 좋아한다. 산토도밍고에도 차이나타운에 이런 시장이 있다. 토요일 낮에만 장이 서는데, 귀한 생선부터 갑각류에 두부까지 없는 물건이 없다. 모든 걸 다 구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에 가면 재미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미니카공화국 사람들은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할 때가 많지만, 중국 사람들은 나를 보면 바로 한국인이라는 걸 안다.

고기는 원하는 대로 다듬어준다.
중국 사람들과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게 어색하다. 중국 시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빵이다. 아침에 맛있는 빵을 구워서 파는 트럭이 있다. 그 빵을 찾는 건 나뿐이 아니다. 그 빵은 인기가 좋다. 중국 음식은 인기가 많아 몇 시간 안에 다 팔린다. 하나 궁금한 것은 섬나라인데 생선이 비싸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 어시장이 있다는데 그곳에 가면 갑각류도 매우 저렴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곳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혀서 가보진 못했다. 차이나타운도 위험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낮에 가면 괜찮다. 어시장은 낮에도 위험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시장에는 덤이라는 아름다운 풍습이 존재한다. 이건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다. 흥정을 하고 한두 개를 덤으로 주며 웃음이 오간다. 사람들 사이의 정이 느껴진다. 상권을 놓고 싸움이 날 때도 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해지는 게 상인들이다.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 시장에서 신발 하나를 사서 신었다. 신고 있던 신발의 끈이 끊어져서 어쩔 수 없이 새 신발을 사서 신고 다녔다. 30분 정도 걸었더니, 신발 밑창이 분리되어 버렸다. 질질 끌고 가서 신발을 바꿔달라고 하니까, 이번 한 번만 바꿔주겠단다. 그러니 잘 골라 가야 한단다. 그러니까 불량품을 파는 게 문제가 아니라, 불량품을 골라 간 내가 잘못했다는 식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시장에서는 내가 잘 골라 갔어야 했다. 이번에는 튼튼한 신발로 잘 골라 신고 나왔다. 

색색이 예쁜 과일을 진열해 놓은 가게.
시장 길거리에 앉아서 파는 것 중에 복권도 있다. 즉석복권인데, 뜻밖에 종류가 많았다. 작은 물 한 병 값이다. 재미로 해봤는데, 복권 한 장 값이 맞았다. 돈으로 받을 수도 있고, 새 복권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했다. 일단 돈으로 바꿔 그 돈으로 물을 사 마셨다. 결국은 내 돈으로 사 마신 것뿐인데, 공돈인 것 같은 착각 때문에 기분은 좋았다.

무턱대고 탄 버스 종착역인 산크리스토발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토도밍고로 오는 길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내 손에도 물건이 잔뜩 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한 바구니 팔아도 될 만큼 사왔다. 가끔은 이렇게 모르는 곳을 향해 버스를 타도 괜찮은 일이다. 그래서 다음 번엔 ‘바니’에 가기로 했다. 바니는 산크리스토발보다 더 먼 곳이다. 이제 곧 바니행 버스를 타 볼 생각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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