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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은 날것 그대로 보여줘… 복합문화공간 만들 것”

입력 : 2015-01-20 21:17:39 수정 : 2015-01-21 10: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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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代이어 ‘산울림’ 운영 임수진·수현 남매 1980년대 중반 연극 연출가 임영웅은 ‘떠돌이 생활’에 지쳐 있었다. 1969년 극단 산울림을 꾸리고 이 극장, 저 극장을 빌려 무대에 선 지 15년이었다. 극단의 보금자리인 소극장을 갖고 싶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월급 받아 생활한 그로선 극장 건립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부인 오증자가 ‘살고 있던 조그만 집이라도 팔자’며 용기를 냈다. ‘소극장 차려놔봤자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닌데….’ 임영웅은 겁이 났다. 결국 집을 팔고 빚을 냈으나 겨우 극장 외형만 세울 수 있었다. 다행히 문화계 인사와 지인들이 십시일반 도왔다. 국내 연극계에 한 획을 그은 산울림 소극장은 1985년 3월 이렇게 탄생했다.

산울림 소극장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극장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 임영웅에게서 두 자녀에게로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누나 임수진(52)은 극장장, 동생 수현(50)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에서 만난 이들은 “극장이 문을 열었을 때 둘 다 대학생이었는데 극장 위층에서 살았다”며 “연습실도 이곳에 있고 공연이 끝나면 집에서 다들 파티를 여니 늘 그런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개관 공연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어요. 극단 산울림이 창단하면서 국내 초연했던 작품이었죠. 어릴 때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고 봤던 이 작품을 성인이 돼 새로 문 연 극장에서 다시 본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감회가 새로웠죠. 제가 불문과였는데, 학문적으로 프랑스 연극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수현)

산울림 소극장 임수진 극장장(왼쪽)과 임수현 예술감독은 “올해 정통에 해당하는 공연은 3∼5월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6∼10월 여배우 열전”이라며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지금까지 이 작품에 출연한 쟁쟁한 배우 14명이 모두 출동하고 ‘여배우 열전’에서는 산울림을 거쳐간 여배우들의 대표작을 모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범준 기자
산울림 소극장은 개관 이후 ‘여성 연극’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연극 관객의 대다수는 여대생이었다. 산울림은 중년이 된 과거의 여대생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를 올렸다. 초연에 무려 5만명이 모여 들었다. 산울림은 이후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여성의 삶을 꾸준히 무대에 담았다. 1989년에는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아비뇽 아르모니 소극장에 진출하는 등 해외 연극계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신진 연출가 발굴에 적극 나섰다.

산울림 소극장이 한창 화제를 몰고 다니던 시절, 수진·수현 남매는 극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가족보다 자기 인생과 사회에 온 관심이 쏠리는 20대 초반이니 당연했다. 1990년, 91년 연이어 유학길에 오른 이들은 동생 수현이 2002년, 누나 수진이 2012년에야 한국에 돌아왔다. 수현은 대학 강단에 서며 극단의 작품 번역 정도에만 참여했다. 수진은 미국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이들이 지천명을 맞은 이제서야 극장을 맡은 건 “개인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도리, 거창하게는 사명감” 때문이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고 건강도 안 좋으셔서 예전만큼 활동하기가 쉽지 않죠. 극장 문을 닫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이어가야 해요. 극장 운영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보니 다른 사람이 하기 힘들어요.”

산울림 소극장은 보조석을 설치해도 100석이 약간 넘는다. 연극 한 편 관람료가 2만∼3만원이니 공연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협찬과 정부 지원이 있어 그나마 운영이 가능하다.

“산울림은 그저 물질적 가치로만 볼 수 없죠. 우리 연극사와 소극장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잖아요. 사실 어려워서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어요.”(수진)

“과거 소극장 운동의 전성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문을 닫았죠. 산울림은 홍대 일대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해온 소극장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갖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산울림 소극장에 대해 갖고 있는 향수나 기대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거죠. 요새 옛 것이 자꾸 없어지잖아요. 제가 파리에서 유학했을 때, 1945년 문을 연 위쉐트라는 극장이 있었어요. 상업가 한가운데에 있는데 관광 명소예요. 이 극장도 대를 이어 운영되는데 부럽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수현)

요즘은 해마다 화려한 무대와 연출, 신기술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공연계가 중·대극장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단출한 소극장 무대는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며 “배우가 내 앞에 앉아서 연기하면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고 전했다. 산울림에서는 작은 실수도 다 들키기에 베테랑 배우조차 굉장히 긴장한다는 것. 배우 박정자는 “1986년 ‘위기의 여자’ 때 ‘심장 박동까지 객석에 전달되는 듯한 소극장은 공포 그 자체였다. 공포를 극복해가며 관객과 호흡하는 연기는 가장 혹독한 배우 수업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소극장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본질적인 걸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래서 더 어려워요. 연극이란 게 원래 화려하게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배우와 무대, 관객만 있으면 날것의 연극이 될 수 있죠. 소극장에서 연극의 본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이들은 지금 산울림 소극장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정통 연극이라는 산울림의 색을 고수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려 한다. 2년 전 ‘산울림 고전극장’과 ‘편지콘서트’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다. ‘고전극장’은 대표적인 고전 문학작품을 젊은 극단들과 연극으로 만든 무대다. 올해는 극단 청년단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이어 양손프로젝트의 ‘모파상 단편선’(내달 1일까지),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페스트’(2월4∼15일), 극단 여행자의 ‘더 정글 북’(2월21일∼3월4일)을 무대에 올린다. 편지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과 연극의 화학적 만남을 꾀하는 기획공연이다. 홍대앞 문화를 끌어안기 위해 여름마다 홍대 앞에서 열리는 프린지 페스티벌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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