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쉽게 현실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보다 나은 내일과 미래를 위해 서로 화합해보자’는 메시지일 것이다. 독단이 설치는 시대에 다른 사람의 주장도 진리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이분법적 사고는 민주 사회를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화쟁(和爭)의 대화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자면 원효대사가 주창한 화쟁 철학의 중심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다. 올바른 화쟁 ‘논쟁(論爭)과 대화(對話)의 하모니’로 완성된다. 논쟁은 ‘내가 옳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라면, 대화는 ‘상대방도 옳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내 주장뿐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도 수렴하는 경청을 통해 보다 성숙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개시개비(皆是皆非)’의 숨은 뜻인 셈이다.
부수적으로 동음인 개시(開始)나 개비(改備)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어떤 행동이나 일을 시작하다’와 ‘있던 것을 갈아 내고 다시 장만하다’라는 의미를 각각 지니고 있다. 이는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개시개비’에는 “전혀 다른 개념이나 이념이 만났어도 서로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면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속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박병춘은 한국화 장르의 대표적인 이단아로 꼽힌다. 하지만 그만큼 ‘진정한 한국성’에 깊은 천착을 보인 작가도 드물다. 그는 주로 농묵의 갈필(渴筆)로 과감하게 윤곽선을 잡은 후 여러 단계의 채색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수묵이 기본을 이루되 가미되는 재료는 목탄, 콘테, 파스텔, 아크릴물감, 혼합재료 등 특별히 얽매이지 않았다. 바로 라면산수, 고무산수, 칠판산수, 봉지산수 등이 그것이다.
창조는 하늘에 떠 있는 별 같은 존재가 아니다.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서로 다름이 존중될 때, 제각각의 객체가 만나 이상적이고 발전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때 창조가 이뤄진다. 창조경제의 환경도 그래야 할 것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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