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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으로 다시 돌아온 그리운 그 이름 박완서

입력 : 2015-01-23 01:39:51 수정 : 2015-01-23 01: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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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기 맞아 데뷔 전반기 산문집 7권 출간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4주기를 맞아 그네의 데뷔 전반기 산문집 7권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살고자 했던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비롯해 세상과 소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촘촘히 포진돼 있다. 산문은 소설과 달리 양식적인 기교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쉽다. 이런 점에서 한 작가의 산문들을 시기별로 구획해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일은 그 작가의 정신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번에 나온 산문집들은 1977년 출간된 첫 산문집부터 1990년까지 박완서가 펴냈던 산문집을 재편집한 것이다. 초판 당시 원본을 바탕으로 중복되는 글을 추리고 현재의 맞춤법에 맞게 수정을 하되 작가 특유의 입말을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다양한 표현을 그대로 살리는 편집 방침을 지켰다.

‘쑥스러운 고백’과 ‘나의 만년필’은 1977년에 연달아 나온 첫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와 ‘혼자 부르는 합창’을 재편집한 것이다. 1970년대 말이라면 한참 근로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던 분위기로 박완서 또한 산업현장 근로자들에게 관심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른바 ‘여공’으로 폄하돼 불리던 당시의 기층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여러분 나이 또래의 여대생들이 발랄하고 당당한 것만큼이나 여러분은 근로하는 여성으로서 당당하고 콧대가 높을 자격이 있다”면서 “실은 저도 대학을 못 나왔고 여러분보다 훨씬 더 비참한 노동에 종사한 적도 있었는데 행여 여러분에게 힘이 될까 하여 그리고 여지껏의 제 말이 조금도 빈말이 아니었던 걸 강조하고 싶어 쑥스러운 고백을 드린다”고 이었다.

경기도 개풍 출생인 박완서는 유년기에 부친을 여의고 교육열이 높았던 억척스러운 어머니를 따라 상경했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을 만났고 전쟁 중에는 미군부대 매점에 출근하며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중개자로 생계를 이었다. 그가 ‘비참한 노동’이라고 ‘여공’들에게 말한 대목이 이것이거니와, 박완서는 이 시절 박수근 화백과 나누었던 일화들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나목’을 써서 1970년 마흔 살 주부작가로 ‘여성동아’를 통해 데뷔했다.

늦깎이 주부작가로 각광받기 시작한 그는 “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룩한 게 작가가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나 준엄한 각오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 일종의 허기증에서였던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내 글쓰기란 내 또래의 중년 여인들이 흔히 빠져드는 화투치기, 춤추기, 관광여행하고 무엇이 다른가”라고 ‘중년의 허기증’에서 심각하게 토로한다. 당선작을 쓰고 나서야 습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그이고 보면 그러한 고민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데뷔 4년차인 시점에 쓴 이 글에서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다짐한다.

1977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산문집들 초판본 날개에 실린 박완서의 흑백사진들. 늦깎이 주부작가로 마흔 살에 데뷔해 40여년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인 그는 “어머니를 닮은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살고 싶다”고 자주 다짐했다.
박완서는 다른 산문 ‘작가의 슬픔’에서는 “나는 참여도 좋아하고, 순수도 좋아하고, 심지어는 참여하고 순수하고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나더러 참여냐 순수냐 그 어느 편에 속하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지면서 다만 슬픔을 느낄 뿐이다”고 썼다. 문학이 격렬한 사회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 있던 시절의 ‘슬픔’이 느껴진다. 회색지대가 존재하기 어려웠던, 어느 쪽이든지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서로 적대적인 진영으로 간주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밖에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살아 있는 날의 소망’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가 이번에 나온 산문집의 목록이다. 박완서의 맏딸 호원숙씨가 어머니의 산문집 발간작업에 같이 참여했는데 그네도 이번에 엄마를 기리는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함께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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