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연극 ‘멜로드라마’(사진)는 장르의 미덕을 최대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장르의 속성을 넘어서는 새로움은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이 오래된 질문을 던지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멜로극에 어울리는 운명을 맞이한다. 수천 수백의 드라마, 영화, 소설에서 변주된 관계와 질문이 극을 채운다. 극을 깔끔하게 만들고 완성도를 높이는 건 섬세하고 세련된 연출, 빠른 전개, 배우들의 열연이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심각한 관객이라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을 듯하다. 심드렁한 이라면 새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김찬일은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아이스크림이나 먹는 착한 남자다. 반면 강서경은 하루를 10분 단위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인간미 없는 완벽주의자다. 성공한 큐레이터로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으로 꼽힌다. 찬일과 연결되는 동생 미현은 유년기에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연령이 낮다. 서경을 사랑하게 된 오빠 재현은 교통사고로 안소이의 오빠에게 심장을 이식받은 드라마 작가다. 안소이는 어릴 때부터 재현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네 종류의 사랑이 충돌하고 갈등한다.
극본과 연출은 뮤지컬 ‘그날들’, ‘김종욱 찾기’의 장유정이 맡았다. 장유정은 대학 시절 이 작품의 줄거리를 완성했으며 2007년 초연, 2008년 재연했다. 그의 섬세한 연출 솜씨는 여러 대목에서 빛난다. 사랑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기승’에 해당하는 장면들에서 보는 이의 공감을 자아낸다. 냉철하고 꼿꼿한 서경이 성당 미사에 재현이 온 것을 보고 급히 고개를 숙여 립글로스를 바르는 것이 한 예다. 우산을 쓴 서경과 재현이 머뭇거리거나 어깨를 잡을 듯 말 듯하는 모습으로 사랑에 빠져드는 ‘결정적 순간’을 표현한다. “비 맞는 거 정말 싫어한다”던 서경은 재현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비 좀 맞아도 괜찮다”고 말을 바꾼다.
“뭉클하고 뜨겁고 거친데 섬세한” 화가 로트렉의 그림 ‘입맞춤’이나 중요한 장면마다 흐르는 제3세계 음악들은 연극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찬일 역은 박원상·최대훈, 서경 역은 홍은희·배해선이 연기한다. 내달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3만5000∼5만원. (02)580-1300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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