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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한센인 '환자'보다는 '한센병 회복자'로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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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3 20:26:00 수정 : 2015-01-23 21: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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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귀국 ‘한센병 회복자 사진전’ 여는 다큐 사진작가 권철씨 ‘이제는 입을 열자/나의 출생은 죄가 아닐뿐더러 내 병 또한 악의 소행이 아닐 터.’

사진집 ‘텟짱-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이하 텟짱)에 실린 시 ‘파계’의 한 구절이다. 이 사진집에는 일본에서 활동한 권철(48)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1997년부터 18년간 한센병 회복자 나가미네 도시조씨(2011년 사망)를 촬영한 기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2014년 도쿄 북페어에서 ‘지금 꼭 읽어야 할 책 30권’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됐다. 권 작가를 지난 21일 서울 중구 시청 근처에서 만났다.

권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23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26일부터 열리는 한센병 회복자 사진전에 전시하는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권 작가는 먼저 26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리는 사진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세계한센병의날(25일) 다음날에 한센병 회복자에 대한 사진전을 열 예정인데, 한센병의 날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센병 회복자와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한·일 역사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본에서 그의 별명은 ‘저격수’(스나이퍼)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한번 시작한 일에 끝장을 보는 성격에서 그의 별명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집념으로 일궈낸 사진집이 ‘텟짱’과 ‘가부키쵸’다.

가부키쵸는 1995년 그가 사진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간 뒤 20년간 도쿄 신주쿠의 환락가 가부키초를 담은 사진집이다. 일본 최고 권위의 출판상인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받았다. 그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그동안 활동한 작품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사진집을 발간했는데 상을 받아버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권 작가의 사진을 보면 사진이 찰나를 담는 예술이란 상식이 무너져 내린다. 그가 찍은 사진 하나하나에 긴 시간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권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하늘을 바라보는 텟짱’의 사진이다. 부산 바닷가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나가미네씨의 모습이 실려 있다. 녹아내린 피부와 사라진 시력에도 바닷바람을 느끼며 회상에 잠긴 나가미네씨의 표정에서 수십년의 세월이 느껴진다.

권 작가는 한센병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사진전을 연다. 그는 “과거 한센병에 대한 대중의 무지로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한센병 환자들이 차별을 받았다”며 “한센병 회복자가 살고 있는 소록도는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왕래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권 작가는 특히 ‘한센병 환자’라는 표현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흔히 ‘한센인’이나 ‘한센병 환자’라고 하지만 그는 “이미 질환을 앓고 난 뒤 삶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환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한센병을 앓고 이미 회복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센병 회복자’라는 표현을 쓰자고 제안했다.

권 작가 한센병 회복자를 사진의 주제로 삼게 된 것은 1997년 일본의 한센인 회복자 시설인 ‘낙생원(樂生院·라쿠센엔)’에서 나가미네씨를 만나면서부터다. 시를 쓰는 나가미네씨를 본 권 작가는 “이렇게 똑똑하고 맑은 사람이 고립돼 지낸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눈이 멀고 손이 뭉그러져 글을 쓸 수 없던 나가미네씨는 행간이나 한자 선택 등을 머릿속에서 떠올린 다음 완벽한 형태의 시를 완성해 자원봉사자에게 구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치 장기판을 머릿속에 그리며 장기를 두듯이.

권 작가는 “나가미네씨가 항상 ‘한국을 침략한 일본의 국민으로서 한국인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 20여년의 일본 생활에서 그는 잘나가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사진 한 장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할 때도 있었고 도쿄 한복판의 좋은 집에서 살기도 했다. 하지만 권 작가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보도사진을 찍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트라우마를 겪었다. 현장의 참혹함 때문이었다. 그는 “콘크리트에 두 다리가 깔려 마취도 없이 이를 잘라낸 소녀가 있었는데 아이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 아이가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찍어서 세상에 알려라’고 다그쳤다”며 “그때 손수건을 아이의 국부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은 뒤 한동안 다시는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1∼2년간 손을 놓고 있던 그가 다시 현장에 돌아온 것은 사회적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2010년 12월 태어난 아이 때문이었다. 그는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사진집을 발간하고 제주도에서 ‘해녀들의 마지막 물질’을 기록하기 위해 물에 들어가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사진 찍을 주제를 추려놨다”고 말한 권 작가는 원자력발전소 문제, 한국 속에 남아 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 홍대나 이태원 등 한국판 ‘가부키초’ 등에 카메라 렌즈를 가져다 댈 계획이다. 권 작가는 “2015년인 올해는 한·일 수교 50년과 동시에 광복 70주년”이라며 “앞으로도 사진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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