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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선전 뜻하는 ‘마타도어’는 투우사의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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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5 21:20:32 수정 : 2015-01-25 21: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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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47>마타도어의 여러가지 의미 ‘오늘의 소사’(小史)를 살피다가 생뚱맞은 쓰임새의 낱말을 만나게 됐다. ‘마타도어’라는 말이 미사일 이름으로 역사의 한 대목에 올라 있었다. 1958년 1월 주한미군은 핵(核)을 탑재한 미사일이 이 땅에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에 배치된 미사일 이름 중 하나가 ‘마타도어’다.

‘공부 좀 했다’는 사람 치고 이 단어 모르는 사람 없다. 대부분 마타도어는 흑색선전(黑色宣傳)이라고 외웠다. 단답형(單答型) 또는 사지선다형 학습의 세례 덕분이겠다. 한국은 어쩌면 그 단어의 출생지보다 이 말을 더 잘 써먹는 ‘상식의 대국(大國)’이 됐다.

핵탄두 미사일의 이름 마타도어, 별로 아는 이 없다. 심지어는 마타도어의 원래의 뜻인 투우사(鬪牛士)라는 이미지도,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생소하다. 알파벳 쓰는 나라들에서 비유적으로 쓰이는 ‘지도적 인물’이란 뜻과 이 ‘흑색선전’은 바로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다. 다만, 카드놀이 즐기는 이들은 흑색선전과 더불어 ‘으뜸패’라는 뜻도 좀 안다.

투우사의 우두머리 마타도어는, 흑색선전과 같은 음흉함과는 거리가 먼 스페인의 ‘영웅’이다. 그 불꽃 차츰 사위고는 있으나 지금도 그 영웅의 면모는 그들의 열렬한 자랑이다.
상식이나 논술 시험을 위해 애써 외운 이 말 마타도어를 혹 스페인에서 ‘흑색선전’이란 뜻으로 활용하지 않기를 귀띔한다. 그곳의 ‘상식인’들은 이런 뜻을 잘 모른다. 그들에게 왜냐고 묻지 말자. ‘우리’에게 물어야 하는 일이다. 왜 마타도어가 마타도어냐고!

짝퉁들이 정보랍시고 떠돌아 다닌다. 아레나(arena·투우 공연장)의 영웅 마타도어(matador·스페인어 [마타도르])가 유독 이 땅에서 ‘흑색선전’이라는 굴욕 간판을 짊어지게 된 까닭을 궁리해 보는 것이다. 투우는 사람이 사나운 소와 싸우는 투기(鬪技)다. 소끼리 싸우게 하는 우리나라 영남 일원의 민속 소싸움와는 다르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계통 무어인(人)들이 스페인에 전한 것이라고 한다. 14세기에 시작해 르네상스 시기인 16, 17세기에 인기 축제로 자리 잡았다.

작살꾼과 말을 탄 창잡이 등 보조 투우사 5, 6명이 소의 여기저기를 찔러 피를 내는 등 광란의 지경으로 몰아넣을 즈음 객석의 함성이 시작된다. 이때 투우사 우두머리인 마타도어가 붉은 천과 칼을 들고 나타난다. 본능적으로 소는 붉은 색을 향해 돌진한다. 천을 흔들며 아슬아슬하게 피할수록 함성은 커진다. 기운 빠진 소의 눈을 보며 단박에 심장에 칼을 박는다.

이 줄거리에 미사일의 이미지(한방에 끝낸다?)나 ‘으뜸패’나 ‘(영웅적인) 지도적 인물’의 상징성이 담겨 있다. 어떤 이들이 소의 본능을 이용하는 붉은 천의 활용 기술을 ‘소를 속이는 것’으로 읽었을까? 이것이 흑색선전이란 말로 돌려쓰게 된 이유일까? 혹 우리 사회의 왕성한 ‘음모론’이 차용한 개념은 아닐까?

1950년대 미군이 한반도에 배치한 핵탄두 미사일에 ‘마타도어’란 이름을 붙인 건 ‘한 방에 끝낸다’는 투우사의 마지막 한 동작을 떠올리며 지은 게 아닐까.
‘마타도어’ 이름을 얻게 된 흑색선전이라는 개념은 정치, 특히 선거 현장에서 횡행(橫行)한다. 심리전 군사용어로도 일반적이다. 상식교재(사전)의 ‘약방의 감초’격 표제어이니 교육계에서도 회자되는 말이다. 그러나 마타도어가 마타도어인 까닭은 뜻밖에 또렷하지 않은 것이다.

언어의 변용(變容)이다. 동아시아 문자학의 중요한 개념인 전주(轉注)를 떠올릴 만하다. 돌려 쓰는 말의 뜻은 뚜렷한데, 원래의 뜻은 도리어 희미해진 모양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말글에 많다.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타도어의 원래 뜻을 아는 것처럼, 본디의 모습을 쥐고 있으면 말과 글과 생각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질 터다.

‘세월호’가 한갓 교통사고라고? 제정신으로 한 얘기일 턱이 없다. 정치적 의도의 ‘애드벌룬’이었겠다. 이런 음흉한 시도나 전략이 정계의 대중조작의 한 방법이다, 흑색선전처럼.
세계일보 자료사진
흑색선전은 소문(所聞), 풍문(風聞), 유언비어(流言蜚語) 등을 연상시킨다. 대중조작(大衆操作·mass manipulation)의 도구로 쓰인다. 때로 히틀러와 같은 외골수 천재의 비뚤어진 열의(熱意)와 함께 데마고기(demagogy·민중선동)로 표출돼 인류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정계나 언론 동네의 애드벌룬(ad balloon·광고풍선)이란 ‘용어’도 정정당당하지 못한 의도와 방법으로 대중(시민)을 좌지우지하려는 꼼수다. 흑색선전과 그 실체는 다를 바 없다. 깨끗하지 못한, 속칭 ‘언론플레이’의 하나다.

여당의 한 정치인이 세월호 상황을 ‘교통사고’로 규정한 것을 떠올려 본다. 설마 그것이 그 국회의원의 진심이었을까? “교통사고 따위로 생긴 일에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느냐?”는 충격적 내용의 광고풍선(공개발언)을 띄워 그 반응을 살피려는 의도였을 터이다. 마타도어가 우리 사회에서 ‘흑색선전’의 대명사가 된 소이(所以)와도 통하는 대목이리라. 의뭉스럽다. 음흉하다.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kangshbada@naver.com

■ 사족(蛇足)

전주(轉注)는 바퀴가 구르고[轉] 물이 흐르는[注] 것이다. 물론 비유(比喩)다. 한 단어를 다른 뜻으로 돌려 쓰는 것이다.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의 네 가지 모습으로 만들어진 문자(文字)들을 가지고 활용하는 방법이 전주와 가차(假借)다. 한자 강의의 첫 시간에 나오는 제목들이다. 이 6가지 중 전주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사전을 보자.

“한 글자를 유추하여 다른 뜻을 끌어 냄. 한 글자의 원래의 뜻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 뜻을 ‘전주’라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한자의 3요소 形(형), 音(음), 義(의) 중 형태는 놓아두고 音과 義만을 만들어 쓰는 글자의 운용 방식을 ‘전주’라고 한다.”

역시 쉽지 않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어려워도 100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스스로 알게 된다고 한다. 읽다 보면 언젠가 깨치겠지만 단서(端緖·힌트)가 있으면 낫지 않겠는가?

수레바퀴 구르다 보면 흙도 먼지도 묻겠다. 씹던 껌도, 낙엽 조각도 들러붙는다. 나중엔 여러 모양이 되겠지만, 본디는 여전히 바퀴다. 물은 흐르다가 땅의 모양이나 그릇에 따라 다른 모양의 ‘물’이 된다. 그러나 바탕은 원래의 그 물 아닌가? 문자학자 김태완 박사(전남대 중문과 교수)의 귀띔으로, ‘원래(글자)’와 ‘갈라져 나온 새 뜻’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뜻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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